가게하다
jl'v;(7971, 샬라흐)
보내다,뻗치다, 쫓아내다, 내보내다
샬라흐(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보내다, (손을) 뻗치다, 쫓아내다, 내보내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85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 푸알형으로 사용되었다.
동사 샬라흐는 '보내다', '내보내다', '풀어 주다'를 뜻하며, 다툼과 불화의 측면에서 사용될시 '펴다', '전개하다'를 의미하고, 손이나 막대기에 사용될 때는 '내밀다', '내뻗다'를, 뿌리와 가지에 사용될 경우 '뻗다', '뻗어나가다'를, 그리고 에쉬(불)와 함께 쓰이면 '불붙이다'를 의미한다.
(a) 샬라흐는 사람이 타인을 모처에 보낸다든지(창 28:5, 창 37:13) 또는 사람이 공물이나(삿 3:15)편지를 보낸다(왕상 21:8, 왕하 5:5)는 표현에 사용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종종 사람들을 자기의 사자, 대리자로서 어떤 공적 임무에 보내는 것으로 묘사된다. 예컨대 하나님께서 자기의 선지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경고하도록 커다란 열심을 가지고 그들을 보낸다는 말이 자주 나온다(참조: 사 6:8, 렘 1:7, 렘 25:4, 렘 26:5, 렘 35:15, 겔 2:3-4, 삿 6:8).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보내지 않았다(렘 14:14-15). 모세는 하나님의 대리자였고(출 4:28, 신 34:11) 기드온도 그러하였다(삿 6:14). 선지자들의 메시지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슥 7:12, 사 9:8). 그리고 그 메시지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것이다(사 55:11).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구주를 보내어 마음이 상한 자들을 싸매 주고 갇힌 자들을 해방시켜 준다는 사실이다(사 61: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낼 때 표적과 기사를 보내었다(시 135:9). 그러나 그들이 만일 자기에게서 돌아서서 우상에게로 향하게 되면 그들에게 견책과 혼란과 저주를 보낼 것이라고 경고한다(신 28:20).
(b) 샬라흐의 '내보내다', '쫓아내다'라는 의미는 일반적으로 피엘형에서 발견된다(창 12:20, 창 18:16). 창 3:23은 분명히 추방을 뜻하며 렘 28:16은 죽음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이혼은 아내를 내어 보내는 것이다(신 22:19, 신 22:29, 사 50:1).
(c) 샬리흐는 '풀어주다, 해방하다'를 의미하며, 역시 주로 피엘형으로 발견된다. 이 때는 손님이 떠나는 것을 정식으로 허용한다는 가벼운 의미로 사용되거나(창 18:16, 창 24:54) 또는 애굽의 이스라엘과 같은 노예들(출 4:21), 바벨론 포로들(사 45:13) 그리고 구덩이의 죄수들을 풀어준다(슥 9:11)는 보다 강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 81:12에서는 하나님이 거역하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임의로 행하도록 버려두어 그 결과를감수하게 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위에 여러가지 형태의 재앙을 풀어 놓는다는 구절들도 피엘형이 사용된 이상, 물론 이와 동일한 범주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보호의 손길을 거두고 여러가지 적대적 세력을 풀어놓는다는 의미이다(민 21:6, 렘 9:16, 암 4:10, 기타 등등).
(d) 샬라흐는 다툼을 '펴다, 전개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잠 6:14, 잠 6:19).
(e) 샬라흐는 손을 '내뻗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삼상 24:6에서 이런 의미를 나타낸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시 110:2에서 메시야는 열국을 통치할 때 자기의 홀을 뻗친다. 렘 17:8과 겔 17:6에서 뿌리와 가지가 뻗어 나간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f) 샬라흐는 '불붙이다, 불을 보내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호 8:14, 암 1:4, 암 1:7, 암 1:10, 암 1:12).
(참조: H. J. Austel).
[동의어] (관련성구)
a/B(935, 보)
들어오(가)다, 가다, 오다
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들어오(가)다, 가다, 오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560회 나오며, 칼형, 히필형,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보(a/B , 935)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공간상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들어가다'라는 의미는 창 7:7에 나오는데, 여기에는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로 "들어갔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동사의 사역형 어간은 '들어가게 하다', 혹은 '데리고 들어오다(창 6:19, 한글개역 - "이끌어 들여")', 혹은 '이끌어 오다, 가져오다'(창 2:19, 이 단어의 최초의 용례)를 의미한다.
이 동사는 창 10:19의 '네가 소돔까지 갈 때'(KJV; "소돔을 지나" - 한글개역) 어구에서 더욱 독립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동사는 '오다'라는 의미와 '돌아오다'라는 의미 둘 다로 사용될 수 있다.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가나안 땅으로 "왔다"(한글개역 - 땅에 "들어 갔다", 창 12:5).
한편 신 28:6에는 하나님께서 (아침에 일하러) '나가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경건한 자들을 축복하셨다고 언급되어 있다. 때때로 이 단어는 해가 '지는 것'을 나타낸다(창 15:13).
이 단어는 '조상에게 돌아간다'(창 15:15)는 의미에서 죽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른 특수한 용례는 '아내에게 들어가는 것' 혹은 '동거'(창 6:4)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또한 시간의 흐름에 대해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지자들은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대해 말한다(삼상 2:31).
마지막으로 이 동사는 거짓 선지자가 그 말대로 이적과 같은 그런 사건을 '이루는' 것에 대해 사용되기도 하였다(신 13:2).
하나님이 '오신다'는 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하나님은 천사(삿 6:11)나 다른 육신을 입은 존재(참조, 창 18:14)를 통해 '오신다', 그는 꿈(창 20:3)이나 다른 실제적인 현현(출 20:20)을 통하여 인간에서 '나타나시어' 말씀하신다. 예를 들어 출애굽 동안에 하나님은 백성들 앞에 가는 구름과 불 속에서 '나타나셨다'(출 19:9).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자들이 그에게 합당하게 예배 드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그들에게 '오신다'고 약속하신다(출 20:24). 블레셋인들은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곳에 '오셨다'고 느꼈다(삼상 4:7). 공식적인 예배와 관련된 용법은 시 24:7에 나온다. 여기에는 영광의 왕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시온의 문이 열리리라고 언급되어 있다. 또한 여호와께서 겔 43:2에 묘사되어 있는 새 성전으로 '돌아 오실'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오심'에 대한 일단의 예언적 묘사가 있다. 이 주제는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자기 백성들을 도우시려고 '오심'에 대한 찬송(참조, 신 33:2)에서 기원한 것 같다. 시편(예: 시 50:3)과 예언서(예: 사 30:27)에는 여호와께서 심판과 축복으로 '오신다'고 언급되어 있다 - 고대 근동 신화에서 차용한 시적인 어투이다(참조, 겔 1:4).
보(a/B , 935)는 또한 메시야의 '오심'을 언급하는데 사용된다. 슥 9:9에는 메시야 왕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묘사되어 있다. 어떤 구절은 특별히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는데, 실로가 오시기까지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하는 창 49:10이 그러하다. 또 다른 난해한 구절은 겔 21:27이다: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동사 보를 사용한 매우 유명한 예언은 인자의 '도래'에 관한 것이다(단 7:13). 끝으로 마지막 날의 '도래'(암 8:2)와 여호와의 날의 '도래'(사 13:6)가 있다(넬슨의 구약해설).
보(a/B , 935)는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고 희생제사를 드리려고 성소에 오는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신 12:5, 신 31:11, 삼하 7:18, 사 30:29, 렘 7:2, 렘 7:10, 시 5:7, H8, 시 42:2, H3). 제사장들이 이 거룩한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이행해야 했는데 반해(출 28:29이하, 출 29:30 등), 그곳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은 의로운 행동을 나타내야 한다(시 15편, 시 24편). 이방인들도 기도하러 올 수 있었으나(왕상 8:41), 환관은 제의 공동체에서 제외되었다(신 23:1, H2). 백성들이 성소에 올 때, 그들은 제사장들에게도 갔다(신 17:9). 그들은 또한 여호와께 물으러 선지자에게 갔다(예: 왕상 14:3, 왕상 14:5, 왕하 4:42, 겔 14:4, 겔 14:7).
(참조: E. A. Martens).
[동의어] (관련성구)
&l'h;(1980, 할라크)
가다, 오다, 걷다
할라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가다, 오다, 걷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0회 나오며, 다양한 문맥에서 그 문맥에 따라 '가다, 오다, 걷다, 떠나다, 나아가다, 계속하다, 지나가다, 행하다, 생활하다, 여행하다, (물이) 흐르다, 추방하다, 파괴시키다, 돌아다니다, 함께 가다, 교제하다' 등 여러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a) 할라크는 특히 다음과 같은 용법들, 즉 명령적인 외침의 용법(창 37:13, 창 37:20, 창 19:32, 창 31:44), 다른 동사의 역할을 확대시키는 부정사로서의 용법(창 8:3, 창 8:5), 다른 동사의 역할을 구체화시키는 한정사로서의 용법(창 27:14, 창 50:18, 왕하 3:7, 사 2:3)에 주목해야 한다.
(b) 여러 종류의 '가는 행위'에 대한 구체적 적용은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뱀의 '기어 다님' creeping(창 3:14), 여우의 '노님' prowling(애 5:18), 배의 '항해' sailing(창 7:18), 물의 '흐름' flowing(창 2:14), 나팔 소리의 '커져 감' laying(출 19:19), 사람의 '걸어감' walking(출 14:29) 등이다. 다른 특별한 용법에서, 이 동사는 어떤 것의 끝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면, 비(아 2:11), 이슬(호 6:4), 바람(시 78:39), 슬픔(욥 16:6), 인간의 생명(창 15:2, 수 23:14) 등의 '끝'을 의미한다.
(c) 이 단어는 가상적인 신(시 115:7)에 대해 사용되기도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적용되기도 한다. 비록 신현현에 대한 기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동사들이 사용되지만 신현현의 문맥에서 분명하게 할라크가 사용된 경우가 적어도 한번은 있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창 18:33). 아마도 창 3:8도 역시 신현현의 문맥일 수 있지만 그 분사는 '여호와 하나님' 보다는 콜(음성)에 연결되는 것 같으며, 이때 그 번역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날 바람결에 동산 전역에 퍼져 가던(going)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 신인동형론적으로 이해할 때, 하나님은 구름 위를 걸으시거나(시 104:3) 하늘에서 걸으신다(욥 22:14). 보다 더 흔하고 더욱 중요한 것으로서, 할라크는 심판이나 축복(삼하 7:23, 시 80:2), 특히 광야 방황 동안에(예. 출 33:14, 출 13:21) 그의 백성에게 오시는 여호와께 사용된다. 후자의 문맥과 관련하여 새로운 출애굽(사 45:2)을 기억하라. 광야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궤를 뒤따랐듯이 그들은 의식에서 그 뒤를 따른다(드물게 할라크로 표현됨; 참조: 수 3:6, 민 10:32-36).
(d) 배교는 그들이 다른 신이나 거짓 신을 '좇는다'(출 32:1, 렘 5:23)거나, 자기 자신의 악한 꾀(렘 7:24, 시 1:1)나악한 마음(렘 11:8)을 추구하거나 어둠 속에 행하는 것으로(사 9:2 [H1]) 표현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레 26:24). 진실로 경건한 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다(즉,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 왕상 3:14, 시 119:1 이하). 이 개념은 할라크 만으로도 나타낼 수 있다(체다코트, 사 33:15 등과 같이 단어 아하레와 함께 쓸 필요가 없다).
히트파엘형은 이와 관련하여 동작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산 사람들의 좋은 예로는 에녹, 노아, 아브라함 등이 있다(창 5:22, 창 6:9, 창 17:1).
(참조: L. J. Coppes; BDB).
[동의어] (관련성구)
&l'y:(3212, 얄라크)
가다, 오다, 걷다
얄라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가다 go, 오다 come, 걷다 walk'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50회 나온다.
얄라크는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움직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단어는 다양한 문맥에서 여러가지 의미(수 17:7도 포함)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용법들, 즉 명령적인 외침의 용법(창 37:13, 창 37:20, 창 19:32, 창 31:44), 다른 동사의 역할을 확대시키는 부정사로서의 용법(창 8:3, 창 8:5, GKC, 113u를 보라), 다른 동사의 역할을 구체화시키는 한정사로서의 용법(창 27:14, 창 50:18, 왕하 3:7, 사 2:3)에 주목해야 한다.
여러 종류의'가는 행위'에 대한 구체적 적용은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뱀의 '기어다님' creeping(창 3:14), 여우의 '노님' prowling(애 5:18), 배의 '항해' sailing(창 7:18), 물의 '흐름' flowing(창 2:14), 나팔 소리의 '커져감' llaying(출 19:19), 사람의 '걸어감' walking(출 14:29) 등이다. 다른 특별한 용법에서, 이 동사는 어떤 것의 끝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면, 비(아 2:11), 이슬(호 6:4), 바람(시 78:39), 슬픔(욥 16:6), 인간의 생명(창 15:2, 수 23:14) 등의 '끝'을 의미한다.
이 동사는 가상적인 신(시 115:7)에 대해 사용되기도 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적용되기도 한다. 비록 신현현에 대한 기사에서는 일반적으로 다른 동사들이 사용되지만(Frank Schnutenhaus, "Das Kommen und Erschinen im Alten Testament", ZAW 76:1-12), 신현현의 문맥에서 분명하게 얄라크가 사용된 경우가 적어도한번은 있다(창 18:33). 아마도 창 3:8도 역시 신현현의 문맥일 수 있지만 그 분사는 '여호와 하나님'보다는 콜(qol: 음성)에 연결되는 것 같으며, 이 때 그 번역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그 날 바람결에 동산 전역에퍼져 가던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 신인동형론적으로 이해할 때, 하나님은 구름 위를 걸으시거나(시 104:3) 하늘에서 걸으신다(욥 22:14).
보다 더 흔하고 더욱 중요한 것으로서, 얄라크는 심판이나 축복(삼하 7:23, 시 80:2), 특히 광야 방황 동안에(예: 출 33:14, 출 13:21) 그의 백성에게 오시는 여호와께 사용된다. 후자의 문맥과 관련하여 새로운 출애굽(사 45:2)을 기억하라. 광야에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궤를 뒤따랐듯이 그들은 의식에서 그 뒤를 따른다(드물게 얄라크로 표현됨. 참조, 수 3:6, 민 10:32-36).
배교는 그들이 다른 신이나 거짓 신을 '좇는다'(출 32:1, 렘 5:23)거나, 자기 자신의 악한 꾀(렘 7:24, 시 1:1)나 악한 마음(렘 11:8)을 추구하거나 어둠 속에 행하는 것으로(사 9:2) 표현되는데, 이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레 26:24). 진실로 경건한 자들은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른다(즉,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 왕상 3:14, 시 119:1 이하). 이 개념은 얄라크만으로도 나타낼 수 있다(체다코트[사 33:15] 등과 같이 단어 아하레와 함께 쓸 필요가 없다). 히트파엘형은 이와 관련하여 동작의 연속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산 사람들의 좋은 예로는 에녹, 노아, 아브라함등이 있다(창 5:22, 창 6:9, 창 17:1). (L. J. Coppes).
(참조: BDB; TWOT).
[동의어] (관련성구)
hl;[;(5927, 알라)
올라가다, 오르다
알라(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올라가다, 오르다, 올라오다'를 의미하며, 여기서 '떠나다, 멀리가다, 끌려가다, 높여지다, ~에 달하거나 미치다, 가져오다, 취하여 가다, 바치다, 높이다' 등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900회 나온다.
(참조: BDB).
[동의어] (관련성구)
h[;T;(8582, 타아)
잘못 행하다(하다), 방황하다
타아(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잘못 행하다(하다), err'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0회 나오며, 칼형, 니팔형,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육체적으로 '방황(랑)하다, 떠돌아 다니다'(출 23:4, 사 35:8, 사 53:6, 욥 38:41, 시 119:176, 창 21:14, 창 37:15, 잠 7:25, 시 107:4, 사 47:15, 사 16:8).
(b) 술 취하여 방황하는 것을 묘사한다(사 28:7). 비유적으로, '당황'에 대해 사용되었다: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시 21:4).
(c) 윤리(도덕)적으로, '잘못(그릇) 행하다(탈선)'(겔 44:10, 겔 48:11, 시 58:3, 잠 14:22, 시 119:110, 잠 21:16, 겔 14:11, 겔 44:10, 겔 44:15). 시 95:10과 잠 29:24에서는 마음이 방황하는 것을 나타낸다.
2. 니팔형에서,
(a) '방황하게 되다'. 시 19:14에서 주정뱅이 같이 행하는 것을 묘사한다.
(b) 윤리적으로 '나쁜 길로 이끌리다'(욥 15:31).
3. 히필형에서,
(a) 신체적으로, '방황하게 하다'. 사 30:28(자갈), 잠 10:17, 렘 50:6(양 같은 백성), 잠 12:26, 창 20:13, 욥 12:24 = 시 107:40.
(b) 술 취함에 대해, 사 19:13, 사 19:14, 욥 12:25.
(c) 정신적, 도덕적으로, '잘못 행하게 하다, 잘못 인도하다'. 사 3:12, 사 9:16, 호 4:12, 암 2:4, 미 3:5, 왕하 21:9 = 대하 33:9, 렘 23:13, 렘 23:32, 렘 42:20, 사 63:17.
(참조: B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