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게 되다
vr'y:(3423, 야라쉬)
붙잡다, 상속하다, 점유하다, 상속권을 박탈하다
야라쉬(vr'y: , 3423) 또는 야레쉬(vrey:)는 기본어근이며, '붙잡다, 재산을 빼앗다, 점유하다, 손에 넣다, 상속하다, 상속권(또는 소유권)을 박탈하다, 가난하게 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30회 나오며, 칼, 니팔,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민간 사건들에서 이 단어는 '상속자가 되다'를 의미한다(참조: 렘 32:8). 군사 사건들에서, 이 단어는 '어느 특정한 지역에 현재 거주하는 주민들을 점령하고 쫓아냄으로써, 그 지역에 대해 지배력을 얻다'를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 단어는 '~의 상속권(소유권)을 박탈하다, 추방하다, 쫓아내다' 그리고 '붙잡다, 점유하다'라는 의미를 취하게 되었다.
(a) 소유와 언약-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어근은 언약과 관련하여, '상속하다' inherit와 '~의 소유권을 박탈하다' dispossess라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 자신의 백성이 되도록, 그들과 언약을 맺었다(예: 출 19:5 이하). 이스라엘의 편에서 볼 때, 중요한 이익은 기업, 즉 그들이 거룩한 민족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땅에 대한 약속이었다(창 15:8, 출 6:8).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그들이 땅을 차지하기 전에, 애굽에서 이미 한 민족이 되었다. 그러므로, 국가가 되기 위해 그들은 땅을 소유해야 했다. 그들은 시내산 언약에 따라, 애굽을 떠나서 그후 팔레스틴을 자신들의 소유로 취하기 위해 계속 나아갔다. 그렇지만 시내산과 첫 번째의 성공적인 정복 시도 사이에는 40년이란 세월이 경과하였다.
(b) 신명기에 나오는 땅을 소유하는 것에 관한 견해-신명기는 백성들이 광야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난 후, 이제 바야흐로 정복을 개시하려 한다는 입장에서 작성된 것이었다. 따라서 야라쉬란 말의 사용 회수가 가장 많은 곳은 신명기이다. 신명기에 묘사된 정복 계획은 정복시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백성들이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신 6:17 이하). 무엇보다도 그들은 반드시 정직하게 살아야 했다(신 16:20).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은 열방들을 멸하고 땅을 소유하도록 그들을 도와줄 의무를 스스로 지셨다(신 12:29).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행하시기 전에, 백성들에게 그 땅으로 오라는 명령을 하셨다. 즉 그들은 전자의 위험 속에 자기 생명을 내맡김으로써,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정복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믿음으로 응답해야 했다. 바꿔말하면, 그들은 약속을 받기 위해 출현해야 했다. 그들이 순종하는 한, 그 주민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크고 강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들 앞에서 그 주민들을 쫓아내실 것이다(신 7:1, 신 11:23, 신 31:3, 시 44:2 이하). 신명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만약 필요하다면, '왕벌'을 열방들 사이에 보내신 것처럼, 극적인 방식으로 주민들을 쫓아내실 것으로 기대했다(신 7:20).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행동과 백성들의 응답적인 기대가결정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둘 다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필요했다(신 9:3). 그들에게 땅을 주시고 그것을 소유하도록 승리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 소유를 취하는데 있어서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했다. 더구나 하나님은 성취 결과가 최선의 것이 되도록 그의 백성들을 통해서 활동하셨으며 뿐만 아니라 자연과 상황을 통해서도 활동하셨다.
정복에 관한 완전히 도덕적인 토대도 있었다. 창세기에는, 아모리인들의 죄가 아직 관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땅을 소유할 수 없었다고 언급되어 있다(창 15:16). 레 18:24-30은 백성들의 도덕성으로 인하여 그들이 땅을 차지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 땅에서 쫓겨나게도 된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이스라엘이 아모리인들을 쫓아내고 가나안을 소유하게 된 이유는 가나안 주민의 죄가, 하나님이 더 이상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도록 허용할 수 없는 정도로 관영했기 때문이라는 데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스라엘은 이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수단이 되었다(신 9:1-5; 신 18:12). 후에 앗시리아가 유다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회초리가 되었던 것처럼(사 10:5 이하), 이스라엘이 아모리인들을쫓아낼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이 그들보다 더 크고 더 고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이스라엘이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그의 심판 도구로 이용되고 그의 사랑 아래에서 기업의 수령자가 되었기 때문이다(신 4:37 이하). 여기에는 분명한 신학적 형태가 수립되어 있다. 언약은 기업을 가져오지만, 사람들은 기업을 얻기 위해 기업으로 받을 곳으로 나아와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업을 얻기 위해 모든 대적자들에게 기꺼이 도전해야 한다. 그렇지만 사실상 대적들을 물리치고 기업을 얻을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가나안 정복은 심지어 세속적인 면에서도 정당한 것으로 입증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주전 15-14세기에 가나안은 명목상 이집트 제국의 한 부분이었으나 그 후 얼마 안되어 곧 이집트 제국의 지배력이 상실되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애굽에서의 가혹한 노예 생활로써, 여호와께서 가나안에서 그들에게 주신 모든 규빗의 땅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R. L. H.]
이스라엘인들은 그 주민을 쫓아내고 파멸시킴으로써, 그 땅을 차지하고난 후에, 그 곳에 정착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순종에 의거한 생활 방식을 수립해야 했다(신 11:31 이하). 왜냐하면 이런 생활 방식을 실현하도록, 율법이 그들에게 소유로 주어졌기 때문이다(신 33:4). 이런 생활 방식을 계속 유지하는 한, 이 땅은 영원히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대상 28:8). 이 땅은 영원히 그들의 것이었지만 그들이 그것을 차지할 권리는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에게서 돌아서서 가증한 이방 관습을 따른다면, 그들은 그 곳에서 살 권리를 잃게 된다. 그렇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적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심으로써 계속하여 그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허용하신다(예: 대하 20:5-7).
(c) 이스라엘의 반응-여호수아의 통치 하에서, 이스라엘은 많은 민족들을 쫓아내고 그 땅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수 12장). 그렇지만 소유해야할 땅은 많이 남아 있었다(수 13:1-6, 삿 1장). 하나님은 여러 민족들을 남겨두시고 이스라엘이 율법에 얼마나 순종하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시험하는 도구로 그들을 이용하셨다(수 23:12 이하, 삿 2:3, 삿 2:21 이하). 이스라엘이 거짓 신의 예배에 빠지게 되면, 그들은 약해져서, 이 민족들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대적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에 부닥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왔을 때, 그는 그들을 구원해 주셨다. 이런 패턴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히기까지 계속되었다(느 9:26-31). 그 이전에, 그들은 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 의도된 온갖 불행을 다 겪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완고하게 불순종하는 행동을 계속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 대한 징벌로서, 그들을 소유하도록 다른 민족들에게 허락하셨다(겔 7:24, 겔 33:23-24). 바사인들의 지해 하에서, 남은 자들은 돌아와서 그 땅에 정착했지만, 그들이 계속 그 곳을 차지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마찬가지로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었다(참조: 스 9:10-15).
(d) 시편에 보편화된 소유 개념-시편들은 땅의 소유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시 25:12 이하), 여호와를 기대하는 사람들(시 37:9), 온유한 사람들(시 37:11), 여호와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시 37:22), 그리고 의로운 사람들(시 37:29)에게 속한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이 땅에서의 이런 형태의 삶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사람들은 기업을 받지만, 그들은 그것을 소유할 수 있도록 행동하고 그들의 기업을 계속 유지시킬 수 있도록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개념은 의심할 여지없이 지복의 배경이 된다-"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e) 종말론적인 용법-선지자들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는 것을 예언할 때, 야라쉬를 둘러싼 이런 주제들을 채택했다. 백성들은 '새 출애굽'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그들은 다시 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렘 30:3). 이사야는 그들의 후손들이 열방들을 소유할 때, 즉 전쟁에서 그들을 쳐부수는 대신에 그 민족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때를 고대하고 있다(사 54:3, 참조: 암 9:12). 백성들이 변화를 받아 의를 따를 것이므로, 그들은 언제나 그 땅을 차지할 것이다(사 60:21). 이 사상은 믿음의 백성이 기업에 대한 약속은 지니지만, 그것을 완전히 누리려면, 그 백성들의 가장 큰 대적인 사탄이 최종적으로 정복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새 언약으로 넘어간다.
(J. E. Hartley).
[동의어] (관련성구)
r/sj]m'(4270, 마흐소르)
소용, 필요한 것, 부족, 결핍, 빈곤
마흐소르(명남)는 하세르(rsej; , 2637: 부족하다, 필요로 하다, 감소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부족, 필요한 것, 결핍, 가난'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소용, 필요한 것', 신 15:8, 삿 19:20,
(b) '부족', 삿 18:10, 삿 19:19, 시 34:9,
(c) '결핍, 빈곤, 가난', 잠 6:11, 잠 24:34, 잠 11:24, 잠 14:23, 잠 21:5, 잠 22:16, 잠 28:27, 잠 21:17.
(참조: BDB).
[동의어] (관련성구)
vWr(7326, 루쉬)
가난하다, 궁핍하다
루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가난하다, 궁핍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4회 나오며, 칼형과 히트폴렐형으로 사용되었다.
어근 루쉬는 낮은 계층의 사람에게 보편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다윗은 미갈과 결혼하기에는 그가 하잘것 없음을 말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삼상 18:23).
그리고 나단은 그의 유명한 비유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하나는 부하고 하나는 가난하니"(삼하 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