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곡한 자
ynI[;(6041, 아니)
가난한, 비천한, 억압 받는
아니(형용사)는 아나(hn:[; , 6031)에서 유래했으며, '가난한 poor, 비천한 humble, 낮은 lowly, 억압(압제) 받는 oppressed'을 의미한다(레 19:10, 삼하 22:28, 욥 29:12, 시 10:9, 사 3:14 등).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7회 나온다.
아니는 억압하는 자에 관해 구체적인 언급이 없는 곳에서는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입장에서 가난한 자들 즉 토지가 없는 자들과 동의어가 된다. 이와 같은 가난은 상속권 박탈과 불법적인 손해에 의한 것이지 그 사람 자신의 잘못에 의하여 비롯된 것이 아님이 이 단어가 재산이 아니라 폭력과 대조되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응당 지불해야 할 임금을 주지 않음으로 고용한 종을 압제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다.
더 나아가서 그가 압제 당할 경우 그는 하나님을 옹호자로 요청할 것이다.
'아니'한 자들은 재정상으로 매일매일 벌어서 생계를 꾸려가는 자들이며 사회적으로는 방어할 수 없는 압제 받는 자임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단어는 물질적인 소유의 결핍에 따르는 어려움을 경험하는 '에브욘'과 함께 빈번히 사용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 아래서 '아니'한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명령 받는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 15:11).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의 '아니'가 심지어 담보물이나 저당물로 삼을 물건이 겉옷 밖에 없다 하더라고 돈을 꾸어 줄 것이며, '아니'한 자는 자신을 따뜻하게 보호하는데 옷이 꼭 필요하므로(이 옷은 그의 유일한 겉옷이다) 그 옷을 밤새도록 돌려주지 않음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더 큰 괴로움을 주지 말 것을 명령한다(출 22:25-26).
레 19:10에서 '아니'한 자들은 타국인과 나란히 밭의 이삭을 주울 권리를 지니는 자로 분류되어 있다. 아니는 잠 22:22에서 달(가난한 자[한글개역에는 "약한 자"])과 구별된다. "약한 자(달)를 약하다(달)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아니)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하나님은 괴로움을 당하는 자들의 보호자이자 구원자로 묘사되며, 그는 그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곤고한 자들의 보호자, 구원자가 되라고 요구하신다. 이러한 요구에 응하는 자들은 경건한 자로 간주되고(겔 18:17) 그리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사악한 자로 간주된다(욥 24:9, 잠 14:21, 사 58:7). 많은 경우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은 불법적으로 가난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경우에 가난하게 되는 또 다른 요인들도 있다. 그들은 심판 받을 때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되었다. 하나님은 누구의 잘못으로 과부가 되지 아니한 과부의 보호자이신 것과 같이 가난한 자의 보호자이셨다. 그러나 이 단어가 어떤 사회적 조건을 가리키기보다 특정 사회적 계급을 가리킨다는 주장은 의문의 여지가 있으며 입증하기가 어렵다.
물질적 상실과 그로 인한 어려움은 사회적 압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사회적 역경은 사 3:14과 겔 18:17에서 분명히 고려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아니'한 사람들(사 10:2)을 공정하게 다루라고 명하신다. 특히 왕은 그들의 권리를 영원히 감독할 책임이 있다(시 82:3).
이 단어는 바벨론 포로 생활로 인하여(사 51:12) 혹은 질병으로(시 88:15, H16) 육체적 고통을 받는 자들을 묘사하기도 한다.
시 22:24, H25에서와 같이 종종 육체적 고난은 영적 고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많은 경우에 외적 고통은 내적 고통을 야기시키고 그 결과 하나님께 도움을 부르짖게 된다(시 25:16, 시 34:6, H7, 시 69:29, H30).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 받는 자로 자주 묘사된다(시 68:10, H11). 하나님은 그들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신다(시 9:18, H19, 시 74:19). 하나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사 49:13) 구원하시며(시 34:6, H7) 건지시며(시 35:10) 그들에게 은총을 베푸신다(시 72:2, 시 72:4).
끝으로 이 단어는 겸손한 (자)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슥 9:9에서 메시야를 묘사한다. 이 단어는 조롱하는 자(잠 3:34, 참조: 약 4:6), 오만한 자(시 18:27, H28, 삼하 22:28)와 대조된다. 이러한(겸손한) 자는 통회하는 심령을 가지고 있으며(사 66:2),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이며(시 74:19),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이며(시 14:6), 구원을 확신하는 자이다(삼하 22:28).
아니(고통 받는)는 종종 아나우(wn:[; , 6035: 겸손)와 혼돈되기도 하며, 이 두 단어는 서로 바뀌어 표기되기도 한다(혹은 ASV와 RSV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바뀌어 번역되기도 한다). 아마도 이는 유명한 요드 와우(yod-wow) 상호 교환에 의한 것일 수 있으나(GKC, sec. 17c; Ernst wurthwein, The Text of the Old Testament, p. 72)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이러한 교환 현상은 복수형에서 자주 나타난다. 이사야는 아니와 아나우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 것 같다.
(참조: C. BROW; L. J. COPP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