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원어사전 구약 - "가두다"

  

가두다

rs'a:(631, 아사르)

매다, 결박하다, 감금하다

 

아사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매다, 묶다, 결박하다, 구속(속박)하다 tie, bind, 가두다, 감금(수감)하다 imprison)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70회 이상 나오며, 주로 칼형으로 사용되었으며, 니팔형(5)과 푸알형(1)으로는 6회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매다, 묶다'. 이 단어는 나귀나 말을 포도나무 등에 매는 것(49:11, 왕하 7:10), 희생을 제단 뿔에 매는 것(118:27)을 묘사한다.

(b) '매다, 마구를 채우다, 매우다'(삼상 6:7, 삼상 6:10, 46:29, 14:6, 왕하 9:21, 왕상 18:44, 왕하 9:21, 46:4). 10:10에서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내가 원하는 때에 저희를 징계하리니 저희가 두 가지 죄에 걸릴 때에 만민이 모여서 저희를 치리라".

(c) '결박하다, 속박하다(끈이나 족쇄로, 죄수로)'(42:24, 15:10, 15:12-13, 16:5, 16:7-8, 16:11-12, 대하 36:6, 39:7, 52:11, 대하 33:11, 왕하 17:4, 왕하 23:33, 36:13,3:25, 149:8, 105:22, 삼하 3:34, 7:5, 39:20, 40:3, 40:5, 49:9, 61:1, 146:7, 16:21, 16:25, 4:14).

(d) '졸라매다, 차다'(12:18, 4:18).

(e) '전쟁을 시작하다, 공격을 하다'(왕상 20:14, 대하 13:3).

(f) '속박하다'(서원이나 맹세의 의무에 대해)(30:2, 30:4-11).

 

2. 니팔형에서

'감금되다, 수감되다'(42:19, 16:6, 16:10, 16:13, 42:16).

 

3. 푸알형에서

죄수로 '결박 당하다, 속박되다'(22:3).

 

참고-'감금' imprisonment이란 말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언급되곤 한다. 이런 사실은 이것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 민족들 사이에서 처벌의 일반적인 형태이었음을 보여준다(40:3, 42:19, 15:34, 왕상 22:27, 37:15, 37:21). 아마도 포로기 이후 시기까지는 히브리인들 사이에 특별한 감옥이 없었던 것 같다. 앗수르와 애굽에는 이런 건물들이 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왕궁이나 재판관들의 집에 딸려있는 토굴이나 구덩이가 감옥으로 이용되었다.

개인들의 자유가 제한되었던 경우도 몇 차례 있다. 즉 요셉의 형제들은 삼일동안 갇혀있었다(42:17). 시므이의 거주지는 예루살렘 도시로 제한되었다(왕상 2:36). 안식일에 나무한 사람은 감금되었다(15:34). 미가야는 아합에 의해 감금되었다(왕상 22:27). 하나니는 아사에 의해 감금되었다(대하 16:10). 호세아는 애굽과 동맹을 맺으려고한 시도에서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 후에, 살만에셀에 의해 감금되었다(왕하 17:4). 여호야긴과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에 수감되었다(왕하 25:27, 52:11).

예레미야서는 다윗 왕조 말기의 이스라엘에서의 투옥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유다의 멸망에 대해 예고했기 때문에 베냐민의 윗문에 있는 착고에 채워졌다(20:2). 수도가 포위되어 있는 동안, 예레미야는 왕궁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감금되었다(32:2). 아마도 이 곳은 궁전을 지키던 보초들의 거처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선지자는 국사범으로 고발되어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감금되었다. 이 곳은 어떤 개인의 자택이 아니라, 감옥으로 이용되도록 양도되었던 그런 이름을 지닌 어떤 건물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집에 토굴과 독방이 있었다고 해석한다면, 이것은 아주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잠간동안, 예레미야는 말기야의 토굴, 혹은 구덩이(보르)에 있었다(38:6).

죄수들은 죄의 중대함에 따라 취급되었다. 삼손은 중노동의 형벌을 받고(16:21) 육체적으로 앞을 못보는 병신이 되었다. 아도니베섹은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려 무능력하게 되었다(1:6). 죄수들에게는 특별한 음식물과 옷이 배당되었다(왕상 22:27, 왕하 25:29). 처벌적인 투옥은 틀림없이 고대 근동, 희랍, 그리고 로마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유스타니아(Justinian) 법전에는 '감옥은 유치를 위한 것이지, 형벌을 위한 것이 아니다'는 명제와 함께 투옥의 보호적인 측면이 제정되어 있었다(C. L. Feinberg)

(참조: BDB; TWOT).

 

 

[동의어] (관련성구)

rWsae(612, 에수르)

, 속박

 

에수르(명남)는 아사르(rs'a: , 631: 묶다, 속박하다)에서 유래했으며, ', 굴레, 속박'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 이 단어는 3회 나온다(15:14, 7:26, 37:15).

(참조: HELOT).

 

 

[동의어](관련성구)

#s'a;(622, 아사프)

모으다, 제거하다, 거두어 들이다

 

아사프(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모으다 gather, 옮기다, 제거하다, 떠나가다 remove, 거두어 들이다 gather in'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니팔형에서 (죽음에 의해) '모이다, 화합하다, 제거되다, 멸망하다', 푸알형은 '모이다', 히트파엘형은 '스스로 모이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99회 나온다.

 

(a) 이 단어는 죽음에 의해 '모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열조에게로 모이다' gathered to he fathers(한글개역, '열조에게로 돌아가매)라는 어구는 자주 '죽다' die 혹은 '죽음' death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25:8, 25:17, 49:29, 49:33, 32:50, 왕하 22:20).

학자들 중에는, 이 어구가 비록 불분명하고 애매하기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내세에 있으리라는 인식과 함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초기 신앙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뚜렷한 신학적 의미가 없이 죽음에 대한 완곡어법일 수도 있다.

이 단어는 저축하는 것(6:21),사람들을 모으거나(3:16, 4:29), 사람들이 모이는 것(29:8), 사람을 가두는 것(42:17), 메추라기를 모으는 것(11:32), 손님을 영접하는 것(19:15, 19:18), 생명이 제거되는 것(18:25), 병을 고치는 것(제거)(왕하 5:3 이하), 민족들이 회집하는 것(43:9) 등을 묘사한다.

 

(b) 이 단어의 주된 사용은 추수와 관련되어 있는데 추수를 뜻하는 일반적인 단어는 카치르이다. 이스라엘이 농경 민족이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 이 추수(카치르)는 큰 의미를 지녔다(8:22, 45:6). 추수에서 유래했거나 아니면 추수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이 있었다(30:14, 3:15, 15:1, 1:22, 2:23, 삼상 6:13, 삼하 21:9, 삼하 23:13). 유대 종교 달력의 주요한 세절기는 세 번의 추수 계절과 관련되어 있었다(23:16, 34:21-22). 유월절은 맥추 때에 있었고, 오순절은 밀 수확 때에 있었고(34:22), 그리고 연말에 거행되었던 장막절은 과일 수확기에 있었다. 보리 수확과 밀 수확기의 사이에는 몇 차례의 소나기가 내려서 밀 수확을 증가시켜 주었다(참조: 4:7). 밀 수확기에서부터 과일 수확기까지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삼하 21:10), 5:24). 모세 율법에서는 추수가 이삭줍기(19:9), 첫 열매(23:10), 그리고 노동해서 얻은 것이 아닌 농작물 수확의 금지(25:5)에 관한 특정한 법률들과 관련되어 나온다.

게셀의 달력은 고대 이스라엘의 추수 계절들을 나타내준다. 올리브는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 사이에수확되었다. 이 때에 긴 막대기로 나무를 때렸다(24:20, 17:6). 삼은 3, 4월에 수확되었는데, 마당에서 삼을 잘라내어 다음에 이슬이나 수증기로 그 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물에 담그기라고 불리움 2:6). 4월이나 5월 초에는 보리 수확이 행해졌고, 5, 6월에는 밀 수확이 행해졌다. 무화과, 포도, 그리고 석류, 여름 과실들의 수확은 8, 9월에 행해졌다.

비유적인 용법들도 있다. 추수의 파괴는 하나님의 징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5:5, 16:9, 5:17). "추수 때"는 종종 멸망의 시기를 나타내곤 하였다(51:33, 6:11, 3:13). 추수의 즐거움은 큰 기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나일의 추수는 풍성한 수확을 의미했다(23:3). 추수할 때가 지났다는 것은 기회를 잃어버려서 돌이킬 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8:20).

(참조: BDB; C. L. Feinberg).

 

 

[동의어] (관련성구)

a/B(935, )

들어오(), 가다, 오다

 

(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들어오(), 가다, 오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560회 나오며, 칼형, 히필형,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a/B , 935)는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공간상의 움직임을 나타낸다. '들어가다'라는 의미는 7:7에 나오는데, 여기에는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로 "들어갔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동사의 사역형 어간은 '들어가게 하다', 혹은 '데리고 들어오다(6:19, 한글개역 - "이끌어 들여")', 혹은 '이끌어 오다, 가져오다'(2:19, 이 단어의 최초의 용례)를 의미한다.

이 동사는 10:19'네가 소돔까지 갈 때'(KJV; "소돔을 지나" - 한글개역) 어구에서 더욱 독립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동사는 '오다'라는 의미와 '돌아오다'라는 의미 둘 다로 사용될 수 있다.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은 가나안 땅으로 "왔다"(한글개역 - 땅에 "들어 갔다", 12:5).

한편 28:6에는 하나님께서 (아침에 일하러) '나가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경건한 자들을 축복하셨다고 언급되어 있다. 때때로 이 단어는 해가 '지는 것'을 나타낸다(15:13).

이 단어는 '조상에게 돌아간다'(15:15)는 의미에서 죽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른 특수한 용례는 '아내에게 들어가는 것' 혹은 '동거'(6:4)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또한 시간의 흐름에 대해 사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선지자들은 '다가오는' 심판의 날에 대해 말한다(삼상 2:31).

마지막으로 이 동사는 거짓 선지자가 그 말대로 이적과 같은 그런 사건을 '이루는' 것에 대해 사용되기도 하였다(13:2).

 

하나님이 '오신다'는 말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 하나님은 천사(6:11)나 다른 육신을 입은 존재(참조, 18:14)를 통해 '오신다', 그는 꿈(20:3)이나 다른 실제적인 현현(20:20)을 통하여 인간에서 '나타나시어' 말씀하신다. 예를 들어 출애굽 동안에 하나님은 백성들 앞에 가는 구름과 불 속에서 '나타나셨다'(19:9).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자들이 그에게 합당하게 예배 드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리고 언제든지 그들에게 '오신다'고 약속하신다(20:24). 블레셋인들은 언약궤가 이스라엘 진에 들어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곳에 '오셨다'고 느꼈다(삼상 4:7). 공식적인 예배와 관련된 용법은 24:7에 나온다. 여기에는 영광의 왕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시온의 문이 열리리라고 언급되어 있다. 또한 여호와께서 43:2에 묘사되어 있는 새 성전으로 '돌아 오실' 것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오심'에 대한 일단의 예언적 묘사가 있다. 이 주제는 하나님께서 전쟁에서 자기 백성들을 도우시려고 '오심'에 대한 찬송(참조, 33:2)에서기원한 것 같다. 시편(: 50:3)과 예언서(: 30:27)에는 여호와께서 심판과 축복으로 '오신다'고 언급되어 있다 - 고대 근동 신화에서 차용한 시적인 어투이다(참조, 1:4).

 

(a/B , 935)는 또한 메시야의 '오심'을 언급하는데 사용된다. 9:9에는 메시야 왕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고 묘사되어 있다. 어떤 구절은 특별히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는데, 실로가 오시기까지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하는 49:10이 그러하다. 또 다른 난해한 구절은 21:27이다: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동사 보를 사용한 매우 유명한 예언은 인자의 '도래'에 관한 것이다(7:13). 끝으로 마지막 날의 '도래'(8:2)와 여호와의 날의 '도래'(13:6)가 있다(넬슨의 구약해설).

(a/B , 935)는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고 희생제사를 드리려고 성소에 오는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12:5, 31:11, 삼하 7:18, 30:29, 7:2, 7:10, 5:7, H8, 42:2, H3). 제사장들이 이 거룩한 영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이행해야 했는데 반해(28:29이하, 29:30 ), 그곳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은 의로운 행동을 나타내야 한다(15, 24). 이방인들도 기도하러 올 수 있었으나(왕상 8:41), 환관은 제의 공동체에서 제외되었다(23:1, H2). 백성들이 성소에 올 때, 그들은 제사장들에게도 갔다(17:9). 그들은 또한 여호와께 물으러 선지자에게 갔다(: 왕상 14:3, 왕상 14:5, 왕하 4:42, 14:4, 14:7).

(참조: E. A. Martens).

 

 

[동의어] (관련성구)

jn"y:(3240, 야나흐)

쉬다,휴식하다, 정착하다

 

야나흐(동사)는 누아흐(j'Wn , 5117: 쉬다, 휴식하다)와 동일하며, '쉬다, 휴식하다, 정착하다'를 의미한다. 이 어근은 움직임이 없는 것 뿐만 아니라 특별한 장소(실재하는 장소나 추상적인 장소)에 정착되는 것 - 종국(finality)이나 (추상적으로) 승리, 구원 등과 같은 부대적 의미를 지님 - 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5회 나온다

기본적으로 어근 누아흐는 공간적인행동을 하지 않음 및 안전함과 관련된다. 이는 예를 들면 아라랏산에 "머물렀"던 방주(8:4)와 애굽에 "내린" 메뚜기(10:14)에서 엿볼 수 있다. '안전' security3:13에서 '정복'이라는 부대적 의미를 지닌다. 이 단어의 히필형은 사역적 의미와 허락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두다' deposit라는 의미를 지닌다. '어떤 것(어떤 사람)을 루아흐하게 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에덴 동산에 "두신다"(2:15). 만나(16:34), 지팡이(17:4, H19), 소산물을 담은 광주리(26:4, 26:10)가 하나님 앞에 "놓인다".

둘째 용법은 '어떤 것(어떤 사람)을 쉬게 허락하다, 즉 상관 않고 내버려두다'를 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그와 같이 상관 않고 내버려두셨다(2:23). 그리고 다윗도 시므이를 내버려두었다(삼상 10:25). 이 어근은 단 한번 '동맹한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7:2).

야나흐는 '떠나다 leave'(10:4), '버리다, 내버려 두다 abandon'(14:9, 119:121)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누아흐는 최소한 4가지 중요한 신학적 용법, 즉 죽음과 관련된 용법, 영적인 용법, 군사적 용법, 구원론적 용법으로 사용된다..

첫번째 용법은 3:13, 3:17에서 볼 수 있듯이 죽음에서 쉰다는 것과 관련된다. 여기에서 욥은 그의 생존을 한탄하고 사산(死産)을 찬양한다(참조: 21:16). 12:13에서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그가 끝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KD).

심리적, 영적 의미는 3:26에 나온다. 이 구절에서 욥은 그가 불안 가운데 있으며(라가즈), 안락(샤카트)이나 평강(샬와)이 없다고 불평한다. 29:17은 아들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마음의 안식을 줄 것이며 영혼에 기쁨을 줄 것이다(병행구)라고 권면한다. 영적인 안식(고통이 없는 상태)14:3, 14:7(참조: 29:9)에 나타나 있으며 28:12에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그러나 28:12에서는 분명히 구원론적 의미를 내포함). 영적인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하고도 참된 곳은 하나님이다(마누아흐, 116:7).

이 단어의 군사적 용법은 이스라엘의 원수들을 패배시키고 그들에게 이 땅에서의 안식(승리와 안전)을 주시겠다는하나님의 약속(12:10)과 그 성취(21:44, H42)를 반드시 수반한다!. 안식을 계속하여 누리는 것은(삼하 7:1) 그들의 복종 여하에 달려 있었다(32:15). 전쟁의 사람이자 도구인 다윗은 하나님의 안식할 처소를 만들도록 허락 받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을 좇아 통치하였으며 평화를 이룩한 왕 솔로몬(즉 안식의 사람)이 허락 받았다(대상 22:9). 하나님의 군사적 주권은 팔레스틴 넘어서까지 미치었다(노아흐, 9:16). 그는 다른 '신들'과 달리 지역에 국한되지 아니하셨다. 이러한 상징적 용법은 125:3에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는 '악의 주권'("악인의 권세")이 의인에게 '머물지 못하리라'("미치지 못하리니")(즉 정복하여 다스리기 위해 미치지 못하리니)고 묘사한다. 역시 이와 비슷한 것으로 14:33, 7:9, 6:8, 특히 11:25, 왕하 2:15, 11:2를 참조하라.

이 단어의 구원론적 용법은 안식일에 관한 신학 주변을 형성한다. 2:2-3에서 샤바트(노동의 중지)가 하나님의 안식을 기술하지만 20:11에서는 누아흐가 사용된다. 따라서 사람은 세상적 추구(31:12-17, 참조: 58:13-14)를 그쳐야 할 뿐만 아니라 승리/구원의 안식의 상태로 들어가야 한다(1:13, 참조: 25:19). (군사적 안식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안식을 가능케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임재와 은총 뿐이다(33:14, 참조: 14:3, 14:7). 진정한 안식/구원은 메시야 시대에 선포될 것이다. 그러나 이방 언어()로 이러한 안식을 선포하는 상태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절정에 달하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참조: 28:12(참조: RSV, 그리고 28:49, 5:15, 고전 14:12).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에 메시야를 통하여 자신의 선택한 백성을 위한 참된 안식을 성취하실 것이다(63:14, 참조: 3:7-19, 4:1-13).

(참조: L. J. COPPES; BDB).

 

 

[동의어] (관련성구)

al;K;(3607, 칼라)

제지하다, 보류하다, 닫다, 가두다

 

칼라(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제한하다, 제지하다, 억제하다, 보류하다, 닫다, 가두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의 기본의미는 어떤 물건이나 사람의 이동,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8회 나오며, 칼형, 니팔형으로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닫다, 가두다'(삼상 6:10, 32:3, 88:8, 43:6).

(b) '제지(억제)하다, 막다'(삼상 25:33, 119:101, 11:28, 40:9, 8:8).

(c) '허락하지 않고 두다, 보류하다'(23:6, 40:11, 1:10).

 

2. 니팔형에서, '제지(억제)되다'(8:2, 36:6, 31:15).

(참조: BDB).

 

참고 - 칼라는 진행되고 있는 것 혹은 자연스럽게 진행될 것에 대한 방해를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하늘의 창문은 홍수가 일어난 후에 닫혔다(8:2).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의 궤를 실은 수레를 끄는 어미 소의 송아지들은 어미 소를 따라가지 못하도록 우리에 갇혔다(삼상 6:10). 위대한 자연의 진행을 방해하는 유일한 것은 불순종이다(1:10). 인간의 타락된 본성에 부여 받은 그러한 불순종 자체는 제어되어야 한다(삼상 25:33, 119:101).

진실을 말하는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중지해서는 안된다(11:28, 40:9). 만약 사람들이 그러한 일들을 계속한다면 하나님의 자비는 또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40:11). 만약 인간과 하나님의 이러한 교제가 중지된다면, 거의 참을 수 없는 압박이 닥칠 것이다(88:8)(J. N. Oswalt).

 

 

[동의어] (관련성구)

rm;v]mi(4929, 미쉬마르)

감옥, 감금, 감시, 지킴, 파수(), 준수(수행)

 

미쉬마르(명남)는 샤메르(rm'v; , 8104)에서 유래했으며, '감금의 장소, 감옥, 감금, 투옥, 지킴, 경계, 감시, 보호, 파수(), 준수'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2회 나온다.

 

(a) '감옥, 감금, 투옥'(40:3, 40:4, 40:7, 41:10, 42:17, 42:19, 24:12, 15:34).

 

(b) '파수, 지킴, 파수꾼(51:12, 4:9, 4:22, 7:3,대상 26:16, 12:24), '지키는 행위'(4:23).

38:7에서 "그들의 대장"은 대장이 어떤 존재인가에 관해서는 의견이 있다. KeilSchroder는 문자적 의미를 따라 그들을 감시하는 자로 이해한다. MichaelisHavernick은 그들에게 법을 주는 자로 규정하고, Hengstenberg는 그들의 후견자로, EwaldSmend는 그들의 지휘자로 해석했다. "그들의 대장"이란 의미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나 '그들을 감시하는 자나 보호하는 자'로 보는 것이 좋다(참조: E. H. Plumptre).

 

(c) '준수, 행사', 13:14에서 성전에서 의식 수행을 의미한다.

(참조: BDB; HELOT).

 

 

[동의어] (관련성구)

@t'n:(5414, 나탄)

주다, 두다, 놓다, 세우다, 만들다

 

나탄(동사)은 기본어근이며, '주다 give, 두다, 놓다, 세우다, 만들다 put, set'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2,000회 나오며, , 니팔,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나탄은 첫째로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준비하기 위한 행동을 뜻한다. 악사는 그녀의 아버지 갈렙에게 신부의 지참금으로 물이 풍부한 땅의 토지 같은 축복을 주기를 청했다. 그녀는 그것을 아버지의 소유로부터 자신의 소유로 '전환해 주기를' 원했다(15:19). 이 동사는 목적어 없이 특수한 용법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궁핍한 형제에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주라'고 가르치고 있다(15:10). 몇몇 경우에서 나탄은 향기를 '뿜다'(1:12)에서와 같이 '발하다'를 뜻하기도 한다. 액체에 관해 사용될 때는 '흘리는 것'의 의미로, 보기로 피를 '흘리다'(21:8)라는 뜻으로 '내버리다'를 의미한다.

 

나탄은 또한 법률분야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것을 넘겨준다는 뜻의 전문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지불하다'(23:9) 또는 '대부하다'(15:10) 등이다. 여자의 부모나 보호자는 신부 값(34:12)이나 지참금(왕상 9:16)을 주는 것 뿐 아니라 여자를 남자에게 아내로 '' 수 있었다(16:3). 이 동사는 또한 요구하는 것을 '주는 것'이나 '들어주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때때로 나탄은 어떤 사람을 보호하여 '주거나'(삼하 14:7), 감옥에 '가두거나'(37:4), 어떤 것을 '파괴하는' 것까지도 의미한다(6:30). 이와 동일한 기본적 의미는 장자를 바치듯(22:29), 하나님께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바치는'(넘겨주는)에 사용되기도 한다. 레위인들은 이런 방법으로 '건네준' 자들이었다(3:9). 이 단어는 어떤 사람에게 '보복을 하는 것' 또는 그가 받을만한 것을 그에게 '주는 것'에 대하여 사용된다. 어떤 경우에는 응징의 행위나(왕상 8:32), 형벌을 그의 머리로 가져오는 것을 강조한다.

 

나탄은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주는 것'(돌리는 것) 같이 어떤 것을 어떤 사람에게 '주는 것' 혹은 '돌리는 것'에 대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인간으로부터 하나님에게로 넘어가는 것은 분명히 아무 것도 없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덧붙여질 것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은 예배 드리는 자들이 무엇이 이미 하나님의 것인가를 인정하고고백하는 것을 뜻한다.

 

나탄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결과를 '주거나', '초래하는' 행위이다. 예를 들면 땅은 열매를 ''() 것이다(25:19). 몇몇 구절들에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은총을 '주실' 때처럼(39:21), '주다' procure를 뜻하기도 한다. 이 단어는 성행위나 동물과 '눕는' 행동을 강조하여, 성적인 행동에 관해서 사용되기도 한다(18:23).

하나님은 하늘의 광명을 하늘의 궁창에 '두셨다'(직역하면 '주셨다', 1:17, 동사의 첫 용례). 관은 머리에 '두었다'(직역하면 '주어졌다', 4:9). 이스라엘 자손은 그들의 땅에 우상을 '세우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나탄의 세번째 의미는 17:5에서 볼 수 있다.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찌라". 이 동사가 이와 같은 의미를 갖는 몇 가지 예들이 있다.

나탄은 신체의 부분과 함께 사용될 때 여러가지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예를 들면 고집하는 어개를 '내밀며' 혹은 '돌리며'와 같은 경우이다(9:29). 이와 비슷하게 '얼굴을 돌이켜[주며]'(대하 29:6)라는 표현과비교해 보라. '등을 돌리다[주다]'라는 것은 달아나는 것을 의미한다(23:27). '손을 주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셀라의 경우에서처럼(38:28) 단순히 '손을 내밀다'라는 뜻 이상이 없는 듯하다. 이 단어는 또한 여호나답이 예후에게 '손을 내밀어'(칼 대신에) 그를 도와 병거에 오른 것 것같이 우정의 행위를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제사장들이 그들의 이방인 아내들을 보내기 위해 '맹세하였을'(저들의 손을 주었을) 때처럼(10:19) 서약의 행동을 의미하기도 하며, 이스라엘의 방백들이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기로 '서약한'(손을 내민) 것처럼 언약을 '세우거나', '새롭게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대상 29:24).

 

'어떤 것을 어떤 사람의 손에 주다'라는 것은 그것을 그 사람의 보호 아래 '맡긴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노아의 손에 '붙이셨다'(9:2, 주셨다). 이 구절은 통치할 수 있는 신권과 같은 정치적인 권력을 넘겨줌을 표현하는데 사용된다(삼하 16:8). 나탄은 특별히 군사적, 사법적 의미로 사용되어 '권력이나 지배를 넘겨주다 혹은 어떤 사람에게 승리를 허락한다'를 의미하는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왕들을 이스라엘 사람 손에 '붙이실' 것이라고 말했다(7:24). 어떤 물건이나 사람에게 '마음을 주다'라는 것은 '그것에 관심을 갖다'를 의미한다. 바로는 모세가 전한 하나님의 명령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관념하지 아니하였고', 7:23). '어떤 것을 마음에 두다[주다]'라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것을 하도록 하는 관심과 능력을 준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히브리 장인의 마음에 다른 사람을 가르칠 능력과 관심을 주셨다(36:2).

 

'~에 얼굴을 주다'는 여호사밧이 전 요단왕들의 동맹을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한' 것처럼(대하 20:3) 어떤 것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이 구절은 단순히 '어떤 사람이나 어떤 물건을 대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30:40). '~에게 얼굴을 돌리다'라는 것이며, '~의 얼굴 앞에'와 같이 쓰여진 '~의 앞에 놓다' 또는 '~앞에 그것을 내려놓다'를 의미하기도 한다(30:6). 그것은 또한 '앞에 두다'(11:26), '치다'(참조: 2:33), 혹은 '누구의 소유로 주다'(1:8)를 뜻하기도 한다.

(참조: NEDOT; BDB).

 

 

[참고 - 2000(주로 칼 어간)나 되는 이 동사의 광범위한 사용을 고려해볼 때 번역상 매우 다양한 의미들이 주어지는 것을 발견하기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단어의 기본적이고 가장 흔한 '주다'라는 의미 외에도 KJV에서 우리는 놓다 set, 위임하다 commit, 두다 put, lay, 묶다 fasten, 매달다 hang, (어떤 것이 되도록) 만들다 make, 임명하다 appoint, ...하게 내버려 두다 suffer(=allow), 수여하다 bestow, 인도하다, 전하다 deliver, 보내다 send, 지불하다 pay, 돌리다 turn, 밀다 thrust, 치다 strike, (제비를) 던지다 cost와 같은 다양한 역어들을 본다. (여기에 '취해지다' be taken/ gotten라는 수동태 의미도 추가된다).

 

ASV는 주로 KJV의 번역과 일치하지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위임하다' commit, 치다 strike, 붙들어매다 fasten와 같은 역어를 '놓다', '두다' put로 대체하고 '인도하다' '전하다' deliver'주다' give로 대체한다. RSVASV의 경우에서 인용한 마지막 실례를 따르는 이외에도 나아가 '...하게 내버려두다' suffer에 대해 '허락하다' permit, '인도하다' deliver에 대해 '두다' place, '저축하다' lay up에 대해 '저장하다' store, '붙들어매다' fasten에 대해 '붙이다' attach, '(돈을) 주다' bestow(money)에 대해 '소비하다' spend 등과 같은 다양한 역어를 사용한다.

 

이 동사는 음성학적으로 볼 때, n's중 하나나 둘 다가 완전히 제거되거나 인접 자음에 동화됨으로 빈번히 손실된다는 의미에서 불안정하거나 혹은 '약하다'. 예를 들어 부정사형은 '테트'인 반면에 우가릿 동족어는 ytn이다. 이것은 단지 t만이 불변한다는 것을 뜻하고 심지어 t마저도 아카드어 동족어 '나다누(nadanu)'에서는 그것의 유성음의 대응물에 의해 대체된다는 것을 뜻한다. nadanud(참조, 이집트어 [r]di '주다'?)는 이 동사와 명사 야드() 간의 연결점이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해준다. 그런데 명사 야드는 이디오피아어 'id, 아랍어 yad, 아마도 이집트어 djrt와 비교될 수 있다(이집트어에서 잘 알려진 상형문자 상징인 손가락 부분이없는 여성용 장갑 같은 모양의 손은 문자 d를 나타낸다. 이 동사에 주어진 모든 의미는 실상 손의 실제적 행동이나 비유적 행동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동사 나탄의 의미를 크게 세 영역으로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1) 주다 give, (2) 두다 혹은 놓다 put or set, (3) 만들다 make 혹은 구성하다 constitute. 번역에서 쓰이는 다른 용어들은 이 세가지의 확대 혹은 변형이다. 예를들어 '주다'란 선물, 보상, 사람 또는 문서를 타인에게 물리적으로 주는 것에서부터 축복, 동정, 허가 등등과 같은 것의 보다 덜 실체적인 부여나 수여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것이든지 의미할 수 있는 것이다. 무생물체도 또한 ''(give)수 있다.-예를들면 나무나 땅은 산출하고, , 사자, 구름은 그들의 고유한 소리를 '발한다' utter, 포두주도 잔 속에서 '거품이 인다' sparkles(문자 그대로는 '그것의 눈을 준다' give its eyes). 종종 하나님이 주는 자가 된다. 그는 생명의 보존을 허락하시며(전재의 상으로서, 45:5, RSV) 애굽에 우박재앙을 내리실(9:23) 뿐만 아니라 비도 주시며(26:4, 11:14), 가축을 위해 풀도 주신다(11:15). 드물게 나오는 동의어 야하브는 '주다' give를 의미하지만, 우리야에 대한 다윗의 명령에 대해 사용될 때 '두다' place, '놓다' put라는 의미도 함축한다(삼하 11:15). 히브리어에서 동사 야하브는 칼형 명령법으로만 사용되고 아람어에서는 더 폭넓게 사용된다.

 

나탄이 '두다', '놓다' put, place, set, '지정하다' appoint를 의미할 때는 보다 특수한 용어인 심(?im) 및 쉬트(shit)와 매우 유사하다. 놓는(두는) 것은 손에 반지를 끼우거나, 머리에 모자를 쓰거나, 죄수를 차꼬에 채우는 것과 같이 실제적인 것일 수 있다. 15:17에서는 송곳을 귀를 통과하여 문에 박는 것, 따라서 귀를 잠간동안 문에 꽂는 것에 대해 문자적으로 사용된다. 보다 비유적인 용법에는 하나님께서그의 영을 종 '위에 붓는 것(42:1), 죄인을 책망하는 것(죄인들 위에 책망을 두는 것, 23:40), 적들을 저주하는 것(적들에게 저주를 두는 것, 30:7), 그의 위엄을 하늘 위에 두는 것(8:1[H2])' 들이 포함된다. 10:32[H33]에서는 이 단어가 성전세의 부과를 언급하고, 4:2에서는 한 (모형) 성읍을 에워싸는 것을 언급한다.

 

이 용법은 넓은 동사의 세번째 용법에 대해서 볼 것 같으면, 3:4은 아이들을 그들의 방백으로 삼는 것을 언급하고 23:27은 원수로 '등지게' 하는 것을, 그리고 9:10[H10]은 폐허무더기가 된 예루살렘을 언급한다. - M. C. fisher.] (p994).

 

 

[동의어] (관련성구)

rg's;(5462, 사가르)

닫다, 잠그다, 넘겨주다

 

사가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닫다, 잠그다, 폐쇄하다 shut, close'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넘겨주다, 포기하다'라는 의미도 지닌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90회 나오며, , 니팔, 피엘, 히필, 푸알형으로 사용되었다.

 

사가르는 가끔 문이나 대문을 닫는 행위(19:6, 19:10, 6:1)나 성벽의 갈라진 틈을 막는 행위(왕상 11:27)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 어근은 또한 많은 특수한 용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자궁을 닫는 것은 불임을 말한다(삼상 1:5-6, 참조: 3:10). 때때로 이 어근은 적대적 태도, 오만한 태도, 탐욕적, 또는 무관심한 태도를 묘사하는데 사용될수 있다. 시편기자(17:10)는 다른 사람들의 파멸을 바라는 오만으로 자신들을 닫아 무감각한 그의 원수들로부터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개인이나 어떤 사람들의 집단은 불행한 환경에 갇힐 수 있다. 보기로사울은 다윗이 쉽게 포위할 수 있는 성읍인 그일라에 스스로 갇혔다고 믿었다(삼상 23:7). 이 어근은 그래서 포위의 상황이나 결과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었다(24:10, 13:19).

파생어간들은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을 어떤 사람이나 다른 어떤 것에 가두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삼상 23:20, 78:48, 78:50).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죄 때문에 원수에게 넘겨진 것이다(78:62, 2:7, 6:8).

이 단어는 하나님이 친히 모든 생의 환경의 주권적 통치로(11:10, 12:14), 역사의 사건들을(45:1) 그 적합한 목적들로 인도하시며 그때 그의 원수들이 심판을 받게 되고(24:22), 영화롭게 되고 번영하는 시온이 열려진 문들로 들어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하는 문장에 사용되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그들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맡겨야 한다(26:20, 3:24).

(참조: R. D. PATTERSON; BDB).

 

 

[동의어] (관련성구)

!Wc(7760, )

두다, 정하다, 임명하다, 확립하다

 

(!Wc , 7760), (!yvi)(동사)'두다, 놓다, 세우다, (지정)하다, 임명하다, 설립하다, 배치하다, 만들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80회 나오며 칼,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숨은 부분적으로 중복되기도 하지만 대략 6가지 용법으로 사용되었다.

 

(a) 숨은 '어떤 장소에 두다'를 의미한다.

이 용법은 어떤 물건이 지정된 장소에 놓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삼상 17:54에서 다윗이 "갑주를 자기 장막에 두었다"거나 8:8에서 모세가 "아론에게 흉패를 붙였다"는 표현 등이다. 무생물체 뿐만 아니라 인격체도 이와 같이 다루어진다. 예컨대 이 동사의 고전적 용법인 2:8에서 "하나님이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덴동산에) 두셨다." 이런 식으로 하여 숨은 또한 하나님이자기가 택한 장소에 자기 이름을 둔다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두리라"(왕하 21:4).

게세니우스(Gesenius)는 숨의 이러한 용법을 주요한 두 범주로 분류한다. 사람과 사물을 수직적 위치로 세워 둠(: 대하 33:7). 사물을 경사적 또는 수평적 위치로 둠(: 10:5, ibid.). 숨이 참으로 두가지 형태의 위치를 가르칠 때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개개의 본문을 고찰해 볼 때 숨이 똑바로 선 위치를 가리키는지 아니면 반듯이 누운 위치를 가리키는지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불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30:41에서 "야곱이 양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경우 숨 하나만을 고찰함으로써 가지를 수직으로 두었는지 수평으로 두었는지 확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BDB는 이러한 수직적, 수평적 위치 구분을 전개시키지 않는다.

 

(b) 숨은 '사람을 지위에임명하다'를 의미한다.

이런 의미의 숨이 전형적으로 사용된 예는 삼하 17:25"압살롬이 아마사로 군장을 삼으니라"라는 말씀과 대상 11:25"다윗이 저 (브나야)를 세위 시위대 장관을 삼았더라"라는 구절이다. 이러한 용례에서도 숨은 여전히 그 기본 개념을 지니고 있으며, 단지 여기서는 어떤 물리적 위치가 아닌 단지 권위적 위치에 둔다는 것이다.

 

(c) 숨은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숨은 어떤 사람, 사물을 새로운 관계나 상황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21:18"내가 그(이스마엘)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히브리 관용구를 사용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마엘을 큰 민족이 되게 놓는다" placesIshmael into a great nation라고 표현하였다. 마찬가지로 1:28에서도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을 조공물에 두었다" put the canaanites to tribute(한글개역: "가나안 사람에게 사역을 시켰고")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숨의 용법은 가나안 사람이 이제 조공을 바쳐야하는 백성의 위치에 놓여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이다. 즉 그들은 새로운 관계에 놓여졌다는 뜻이다.

 

(d) 숨은 '어떤 것을 아무개에게할당하다'를 의미한다.

숨의 또 하나의 용법은 지명을 나타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삼하 23:5에서 KJV'He hath made with me an everlasting covenant'. "(하나님)가 나로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한글개역).

히브리어 원문을 보다 축자적으로 읽으면 'For a covenant everlasting he-has-put to me' '영원한 언약을 내게 그가 두셨다'가 된다. 여기서 언약이, 받는 자로 지정된 다윗에게 두었다는 뜻이다(참조: 19:4).

 

(e) 숨은 '변화를 일으키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14:21은 홍해가 갈라진 사건을 말하면서 하나님이 '바다를 마르게(마른 땅이 되게) 하였다'고 기록한다. 여기서 다시 관용구를 직역해 본다면 하나님이 '바다를 마르도록 놓았다' put the sea dry가 된다. 그 위치가 아닌 상태의 변화이다. 그리고 41:15, 41:18, 35:4, 기타 등등도 참조하라.

 

(f) 숨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따로 구별해 두다'를 의미한다.

나아가서 숨은 하나님께서 (그리고 때로는 인간의 작인이) 일정한 시간, 장소, 사람을 어떤 특별한 목적에로 지정한다는 것을 뜻하는 동사로 가끔 사용된다. 예컨대 9:5의 문자적 의미 '그리고 여호와께서 일정한 시간을 두셨다'()(한글개역 "기한을 정하여")AV가 적절하게 옮겼다. 'And Lord appointed a set time' '그리고 여호와께서 일정한 시간을 지정하였다.'

우리가 예를 들어 설명한 바와 같이 동사 숨은 항상 '두다' to place라는 기본 의미를 함유함과 동시 본 항목에서 열거된 대략적 범주 이상으로까지 확대되는 수많은 파생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창조자-구속자로서 여호와께서 이 동사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는 피조계의 범주를 정하였다(참조: 28:3, 38:5, 39:6, 19:4, 104:9). 구속자로서 그는 조상의 씨를 티끌같이 많게 하셨으며(13:16, 32:12, 10:22) 다윗의 씨를 영구하게 하셨다(89:29). 그는 이스라엘에 법도를 정하였으며(78:5) 기적을 일으키셨고(78:43) 땅을 황무케 하셨으며(46:8) 이스라엘에 고통을 가하였다(66:11). 그러나 종말에 그는 이스라엘을 자기의 의의 도구로 만들 것이다(41:15). (G. G. Coh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