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b/rq;(7138, 카로브)
가까운, 근친의, 친한
카로브(형용사)는 카라브(br'q; , 7126: 가까이 오다, 접근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가까운, 근친의, 친한 near'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6회 나온다.
(a) 카로브는 공간에 대해 '가까운 것'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공간적 접근을 묘사한다(창 19:20, 창 45:10).
이 단어는 종종 '먼'과 짝을 이루어 전문적 문구로서 '모두' all를 뜻한다: "너 이름이 더럽고 어지러움이 많은 자여 가까운 자나 먼 자나 다 너를 조롱하리라"(겔 22:5).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에서 기도 중에 이 문구를 반복한다(왕상 8:46).
선지자들도 이 문구를 꽤 자주 사용하였다. 예컨대 "원근 각지의"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조롱할 것이나(겔 22:5, 한글개역: "가까운 자나 먼 자나 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존함으로써 그들의 대적들이 그의 힘을 인정하게 되리라(사 33:13)는 표현 등이다.
(b) 카라브는시간에 대해, '가까운 것'을 나타낸다.
시간적 의미의 접근(임박) 개념은 즐거운 일(민 24:17), 원인이나 전조가 되는 사건(시 34:18, 시 85:9, 잠 10:14)과 관련하여 등장한다. 이 시간적 의미는(임박한 파멸의 뜻) 모세에 의해 재난의 날과 관련하여(신 32:35) 그리고 선지자들에 의해 여호와의 날과 관련하여 사용된다(사 13:6, 습 1:7, 습 1:14). 여기의 개념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물론 그 사건의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신 32:17에서는 '근래에' 일어난 새 신을 언급한다.
(c) 카라브는 가족 관계(레 21:2-3, 레 25:25, 룻2:20, 룻 3:12, 삼하 19:42, 욥 19:14, 시 38:11), 상호관계(느 13:4)에 있어서 가까운 것을 묘사한다.
(d) 카라브는 '인신론적 근접'에 대해 사용되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4).
(e) 겔 23:5에서는 카로브가 '연애하는 자'와 병행하고 있는데 전자의 의미도 아마 상기한 두 구절의 의미와 같은 것이다(한글개역: "이웃"). 그리고 시 38:11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참조: 시 88:18).
(참조: L. J. COPPES; BDB).
[동의어] (관련성구)
lx,ae(681, 에첼)
옆에, 곁에, 가까이에
에첼(전치사)은 '옆에, 곁에, 가까이에'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60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전치사 에첼은 문자적으로 단순히 '가까움'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① 장소에 대해, 기브아 가까이(삿 19:14), 에느로겔 근방(왕상 1:9), 모레 평원 곁(신 11:30), 베들레헴 근처(렘 41:17)를 나타낸다.
② 위치에 대해, 단 곁에(레 1:15), 시체의 곁에 선 사자(왕상 13:25), 보좌 팔걸이 곁에 서 있는 두 마리의 사자(왕상 10:19), 자기 집 가까이(느 3:23)를 나타낸다.
③ 다른 사람에 대해, 자기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는 것(왕상 13:31), 그들을 형제에게 돌리는 것(대하 28:15), 왕후가 그의 곁에 앉아 있는 것(느 2:6), 에스라 곁에(느 2:6), 그가 나의 선 곳으로 나오는 것(단 8:17), 바사국 왕들과 함께 머무는 것(단 10:13)을 나타낸다.
(b) 전치사 에첼은 비유적 문맥에서 사용되었다.
① 잠 7:8에서 어리석은 여자가 사는 집 모퉁이 '가까이' near의 거리를 경솔하게 어슬렁거리는 의심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언급한다. 사실상 그녀가 모퉁이 마다 '에서' at 기다리고 있다(잠 7:12). 반대로, 지혜는 처음부터 하나님 편의 '곁에' by 있었다(잠 8:30).
② 삼상 5:2에 보면 사무엘 시대에 블레셋인들은 이스라엘 인들에게서 궤를 탈취하여, 그것을 그들의 신전들 중 한 신전의 다곤 "곁에" 두고자 하였다(삼상 5:2). 그 결과는 아주 비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제나 그러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의 곁에 두고자 하는 어떤 거짓 신에 대해서도 대항하신다.
(참조: V. P. Hamilton; Gesenius).
[동의어] (관련성구)
qb'D;(1692, 다바크)
달라붙다, 굳게 결합하다(밀착), 충실히 대하다, 접근하다
다바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달라붙다, 집착하다 cling, 굳게 결합하다, 충실히 대하다 cleave, 접근하다 keep clos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54회 나오며, 칼, 푸알, 히필, 호팔형으로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a) 다바크는 '달라붙다, 집착하다, 굳게 결합하다, 충실히 대하다(충성)'를 의미한다. 다바크는 서로 달라붙어 있는 물체, 특히 신체의 각 부분에 대해 사용되고 있다. 욥은 자신의 피부와 살이 뼈에 붙어 있으며(욥 19:20), 원래부터 귀인들의 혀는 그가 나타나면 입 천정에 붙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욥 29:10). 침묵할 때에 혀가 입 천정에 붙어 있다는 그러한 비유는 시 137:6, 욥은 현대 세계에서 잘 알려진 비유로 욥 31:7에서 자기 손에 더러운 어떤 것도 붙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무죄를주장하고 있다. 악어에 대한 하나님의 묘사에서 하나님은 "그 살의 조각들이 서로 연하고"라고 언급하시는데(욥 41:23), 그것은 악어의 살에 붙은 비늘 혹은 뱀의 비늘(?)을 언급하는 것이다.
다바크는 좋지 못한 상황에 관하여 쓰이고 있다: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시 102:5). "젖먹이가 목 말라서 혀가 천장에 붙음이여"(애 4:4).
몸의 지체는 여러 가지 대상물에 달라붙어 있다고 언급되고 있다. 시 44:25은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라고 언급하며 시 119:25은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라고 언급한다. 다윗의 용사 중의 한 사람은 그가 "손이 피곤하여 칼에 붙기까지" 블레셋 사람을 살해하였다고 한다(삼하 23:10).
다바크는 애정과 충성으로 어떤 사람에게 굳게 결합되거나 밀착되어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남자는 자기 아내에게 굳게 결합하여야 한다. 곧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그와 친밀히 지내고 애정과 성실로 그녀에게 밀착되어 있어야한다(창 2:24). 룻은 나오미에게 밀착하여 충실히 대하였다(룻 1:14). 유다 사람들은 세바의 반란 때에 자신들의 왕인 다윗과 합하였다(삼하 20:2). 세겜은 디나를 사랑하여 그녀에게 연연했고(창 34:3), 솔로몬은 사랑으로 자기의 아내들에게 집착했다(왕상 11:2).
가장 중요한 사실로서, 하나님의 축복이 이스라엘에게임하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애정과 충실히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으면 안된다(신 10:20, 신 11:22, 신 13:4, 신 30:20, 수 22:5, 수 23:8).
렘 13:11에서는 사람의 띠가 허리에 밀착하여 있는(칼형) 것 같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온 집과 유다 온 집으로 자기에게 굳게 결합하게 하였다(히필형) 한다. 이러한 구절들에서 주님에 대한 적절한 자세를 묘사하고 있다.
(b) 다바크는 '~함께 머무르다, 접근하여 있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보아스는 룻에게 "나의 소녀들과 함께", 또는 가까이 있을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룻 2:8, 룻 2:21), 그래서 룻 또한 그렇게 했다(룻 2:23).
2. 푸알형에서 다바크는 '굳게 결합되다'를 의미한다. 악어의 비늘은 서로 굳게 결합되어(달라붙어) 있으며(욥 41:17), 흙덩이 또한 그렇다(욥 38:38).
3. 히필형에서
(a) 다바크는 '달라 붙게 하거나 굳게 결합시키다'를 의미한다. 고기로 비늘에 붙게 하는 것(겔 3:26, 겔 29:4), 비유적으로 백성으로 하나님께 굳게 결합시키는 것(렘13:11), 질병이 몸에 달라붙는 것(신 28:21)을 묘사한다.
(b) 다바크는 '접근하여 (바싹) 추적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사람들을 바싹 추적하였으며(삿 20:45), 나중에는 블레셋을 추적하였다(삼상 14:22). 또한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바싹 추적하였다(삼상 31:2, 대상 10:2).
(c) 다바크는 '따라 잡다, 따라 붙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라반은 길르앗 산에서 야곱을 따라 잡았으며(창 31:23), 미가는 단의 자손들을 따라 잡았다(삿 18:22).
4. 호팔형에서 다바크는 '달라붙게 되어졌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시 22: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갈증으로 인한 메시야의 고통을 묘사한다.
(참조: BDB; E. S. Kalland).
[동의어] (관련성구)
![i(5973, 임)
~와 함께, 곁에, 가운데, 말미암아 등
임(전치사)은 '~와 함께 with, 곁에 beside, ~로 말미암아 by, ~에 대하여 again, ~을 향하여 toward, ~가운데 among, ~사이에 between, ~중에서부터 from among, ~에도 불구하고 in spite of, ~외에 except'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1,000회 이상 나온다.
명사 임과 마찬가지로 전치사 임은 포함함, 함께 함, 동료의 개념을 표현한다(참조: UT19: no. 1863). 사람들은 함께될 수 있다. 서로 다투기도 한다(창 26:20). 사람들은 함께 상속할 수 있고 함께 나눌 수도 있다(창 21:10, 수 22:8). 사람들은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고, 더불어 기뻐할 수 있으며 서로에게 친절을 베풀 수도 있다.
강조점은 다음과 같다.
① 이 단어가 전하는 근본 개념은 친교, 교제, 고난, 번영 등의 공동경험의 개념이다.
② 이 용어는 사회적 지위, 신분 등과 관계 없는 공동의 분깃을 강조할 수 있다.
③ 다른 모든 전치사들과 마찬가지로 이 전치사도 분명한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모든 전치사가 여러가지 관계를 나타내지만 임은 특히 밀접한 관계를 강조한다. 이러한 유형의 관계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유지되어야만 한다. 그것은 어느 개인의 구원, 영생,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섬김에 본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에트도 '~와 함께' with를 의미하지만 임이 관계의 개념을 더 잘 표현하며 두 단어 중에서 임이 더 흔히사용된다.
[동의어] (관련성구)
breq](7127, 케레브)
가까이 가다(오다), 제물을 드리다
케레브(동사)는 히브리어 카라브(br'q; , 7126)에 해당하며, '~에 다가가다, 가까이 가다, 접근하다, 가까이 오다'를 의미한다. 그러나 사역형은 '제물을 드리다'를 의미한다.
(참조: BDB; TWOT).
[동의어] (관련성구)
breq;(7131, 카레브)
가까이 가는, 접근하는
카레브(형용사)는 카라브(br'q; , 7126)에서 유래했으며, '~에 다가가는, 가까이 가는, 접근하는'을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2회 나온다(민 1:51, 민 3:10, 민 3:38, 민 17:13, 민 18:7, 신 20:3, 삼상 17:41, 삼하 18:25, 왕상 4:27, 겔 40:46, 겔 45:4).
[동의어] (관련성구)
b/rq;(7138, 카로브)
가까운, 근친의, 친한
카로브(형용사)는 카라브(br'q; , 7126: 가까이 오다, 접근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가까운, 근친의, 친한 near'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76회 나온다.
(a) 카로브는 공간에 대해 '가까운 것'을 나타낸다. 이 단어는 공간적 접근을 묘사한다(창 19:20, 창 45:10).
이 단어는 종종 '먼'과 짝을 이루어 전문적 문구로서 '모두' all를 뜻한다: "너 이름이 더럽고 어지러움이 많은 자여 가까운 자나 먼 자나 다 너를 조롱하리라"(겔 22:5).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에서 기도 중에 이 문구를 반복한다(왕상 8:46).
선지자들도 이 문구를 꽤 자주 사용하였다. 예컨대 "원근 각지의"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조롱할 것이나(겔 22:5, 한글개역: "가까운 자나 먼 자나 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보존함으로써 그들의 대적들이 그의 힘을 인정하게 되리라(사 33:13)는 표현 등이다.
(b) 카라브는 시간에 대해, '가까운 것'을 나타낸다.
시간적 의미의 접근(임박) 개념은 즐거운 일(민 24:17), 원인이나 전조가 되는 사건(시 34:18, 시 85:9, 잠 10:14)과 관련하여 등장한다. 이 시간적 의미는(임박한 파멸의 뜻) 모세에 의해 재난의 날과 관련하여(신 32:35) 그리고 선지자들에 의해 여호와의 날과 관련하여 사용된다(사 13:6, 습 1:7, 습 1:14). 여기의 개념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 가까이 왔다는 것은 물론 그 사건의 전조가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신 32:17에서는 '근래에' 일어난 새 신을 언급한다.
(c) 카라브는 가족 관계(레 21:2-3, 레 25:25, 룻 2:20, 룻 3:12, 삼하 19:42, 욥 19:14, 시 38:11), 상호관계(느 13:4)에 있어서 가까운것을 묘사한다.
(d) 카라브는 '인신론적 근접'에 대해 사용되었다: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신 30:14).
(e) 겔 23:5에서는 카로브가'연애하는 자'와 병행하고 있는데 전자의 의미도 아마 상기한 두 구절의 의미와 같은 것이다(한글개역: "이웃"). 그리고 시 38:11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참조: 시 88:18).
(참조: L. J. COPPES; B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