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 교회 CHURCH

 교회 CHURCH


정의

현대 서구 문명에 속한 자들이 “교회”라는 단어를 들으면, 두 사람 중 하나는 서로 상반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 이 단어는 특정 장소에서 규칙적으로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특별한 사람들의 모임에 대한 즐거운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단어는 그 구성원에게, 때로는 심지어 공동체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종종 너무 지나치게 특별한 종교적, 도덕적 신앙을 강요하려는 억압적인 기관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전자의 관점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지닌 불완전한 이해이지만, 후자의 관점은 일종의 수년간 개인 혹은 공동체와 조우해 왔던 사람들의 일련의 교회와의 친선 관계에 대한 불평의 결과다.

이와 같이 전혀 다른 두 가지 관점을 염두에 두고, 성경의 저자들과 다른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의 성격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통찰이 현대의 이해를 구조적으로 형성할 수 있는지 시험해 봄으로써 우리는 보다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교회를 설명하고, 그 성격을 기술하는 그들의 노력 속에 셀 수 없는 용어와 이미지를 사용한다. 보다 친숙한 것 중 어떤 것에는 “그리스도의 신부”(엡 5:22–27)를 포함하여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나 “하나님의 성전”(고후 6:16) 등이 있다. 하지만 교회라는 단어는 실제로는 헬라어 단어, 에클레시아(ekklesia)에서 유래한다. 신약 성경에서 이 단어는 때때로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활동하는 믿는 자들의 지역 공동체와 관계가 있었다(행 5:11, 11:22, 12:5; 고전 1:2; 갈 1:2). 다른 경우는 그들이 어디에 살고, 어디에서 모였는지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전체 백성을 암시한다(고전 10:32, 12:28). 마지막으로, 어떤 저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새로운 생명의 차원을 실현해 가려는 믿는 자들의 공동체로 기술했다(살전 1장).

바울은 교회의 또 다른 중요한 이미지를 사용했는데, 기독교 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묘사했다(고전 12:12–27). 이런 이미지를 사용함으로써, 그는 도처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는 한 몸의 일부라고 인식했다. 더구나 이 이미지의 중점은 모든 구성원에게 성장과 최선의 몸의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올바른 기능을 실행할 것을 요청하는 역동적이고 살아 있는 조직으로서 교회를 이해하는 데 있다. 이 같은 것들이 신약 성경 저자들이 교회를 묘사한 몇몇 방법을 대표한다면, 초기 기독교 신학자들 역시 이와 같은 정서에 공감했다.

니케아 신경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통 속에서 깊은 가치를 지니는 교회의 성격에 대한 초기 선언을 대표한다. 이 공회의 구성원들은 참된 교회의 “네 가지 표징”에 대한 그들의 서약을 확정했다. 그들은 교회를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이고, 사도적인” 것으로 묘사했다. 이런 각각의 기술어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공동체의 성격을 지각했던 중요한 방법을 드러낸다.

● “하나의”, 바울의 주장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 몸의 일부라는 점을 반복한다(롬 12:5; 고전 12:13; 엡 4:4–6).

● “거룩한”, 이는 교회의 성격에 대한 묘사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결과이며(엡 5:25–27), 또한 공동체적으로, 그리고 개별적으로 특별한 방식 안에서 살아갈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벧전 1:14–16).

● “보편적인”이란 용어는 많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기독교의 특정 종파, 즉 로마 가톨릭교회와 관련짓기 때문에 종종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기독교 공동체가 모든 믿는 자를 포괄해야 한다는 믿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제자들로서 매우 일찍 배운 바대로, 공동체는 모든 인종(행 8:26–40, 10:23–48, 15:1–21)과 언어(행전 2:6), 성별(행 2:17–21; 갈 3:26–29)로부터 믿는 자들을 결코 의도적으로 배제하지 않고 포용했다.

● “사도적인”, 이 말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초대 사도들의 가르침을 유지하는 연속성의 중요함을 표현했던 방식과 관련된다.



적용

오늘의 문화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교회의 성격과 목적에 대한 이런 요소들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먼저, 우리는 교회의 지역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성격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특정한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서도 다른 문화와 다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과의 대화에 규칙적으로 참여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진실로 기독교 교회가 보편적이라고 파악한다면, 우리는 다른 문화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이 풍성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생활을 이해하면서 얼마든지 우리를 도울 수 있도록 마음과 정신을 열 것이다.

또한 우리는 초기 선언(니케아 신경)에서 강조되었던, 그리스도 아래에서 일치와 연합을 추구해야 한다. 교회의 역사는 개인적, 정치적, 신학적 문제에 있어 불일치와 불화를 만들어 왔다. 우리는 공동으로 나누어야 할 가치 있는 문제보다 우리를 분열시키는 문제들을 자주 강조했다. 비록 우리가 모든 교리적인 면에서 일치하지는 않을지라도, 우리의 차이점을 제쳐두고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시 결집시키는 가치관을 찾아내기 시작할 수 있다.

또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미지는 교회의 개별적인 구성원으로서 우리의 책임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애석하게도 그리스도인들은 때때로 교회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소비주의를 지향하는 그들의 성향을 극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종종 신비주의적 성향이 얼마나 우리를 이롭게 한다는 바탕을 가지고 교회를 선택하고, 우리의 참여를 조정한다. 만일 우리가 교회나 우리의 참여로부터 기대했던 것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간단하게 다른 곳에서 우리의 욕구를 채워 줄 보다 나은 공동체를 보러 다닐 것이다. 반대로, 바울이 제공한 몸의 이미지는 우리가 교회와 함께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올바른 기능을 쉽게 하기 위해 우리의 은사를 사용할 확실한 책임을 가지는 것을 내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재능과 은사가 지역 공동체에 얼마나 유익이 되는지 검토하는 데 보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며, 우리의 공동체가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이 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은 훨씬 적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독교 공동체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지속하는 사명의 유형적 표상이라는 사상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교회에 대해 가지는 부정적 인식은 이런 진리에 대한 시각을 상실한 그리스도인들과 실제로 교류하여 생긴 결과다. 우리는 예수께서 가장 위대한 것으로 규정한 계명들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보다는 그런 문제들에 대해 열정적인 자세로 우리 스스로 규정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과 사명에 대한 시각이 부적절하거나 부정확하다며 내던져 버렸다. 따라서 우리는 바르게 행동하고, 자비로 사랑하며,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함으로써 명백한 대안을 제공하는 공동체의 전형이 되도록 우리 자신을(개인적으로 또한 공동체적으로) 다시 헌신해야 한다(미 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