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 "가족 FAMILY"

가족  FAMILY


정의


가족은 혈통이나 맹약(盟約)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모임이며, 모든 인간관계 중 가장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지상의 가족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함께하심의 성질을 반영하는데, 즉, 하나님 아버지, 아들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완벽한 모임을 모방하는 것이다. 가족은 전형적으로 남자와 여자 사이의 혼인 서약으로 맺어진 아담과 하와의 형태를 모방한다. 이러한 두 가족의 연합은 결국 자녀의 출생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가족의 결합은 자녀의 입양이나, (성인) 자녀, 부모, 조부모, 형제자매, 숙모와 삼촌의 영적 결연과 같은 서약에 의해 형성되기도 했다(딤전 1:2; 딛 1:4). 이런 방식으로 어떤 출생이나 결혼 상태의 개개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가정생활의 예시를 경험한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가족의 연합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기희생적이고 이기심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바탕을 둔다. 가족은 거의 평생 관계이기 때문에, 가족 관계는 성격을 연단하며, 사랑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는 일차적인 연구실을 제공한다. 이런 배움은 개개인들이 완고하고 무뚝뚝한 한집안 사람들(종종 “미운 세 살” 아이들, 반항적인 십 대, 병든 조부모와 같은 과도기 혹은 단절의 단계에 있는)을 신실하게 돌볼 때 생겨난다. 가족 구성원들은 “좋든, 싫든” 서로를 의지하기 때문에, 탄력성과 연민은 가족생활에 있어 필수적인 속성이다. “그의 친족, 특히 가족 돌보기”를 거절하는 것은 가족의 의무를 이해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는 것이다(딤전 5:8).

가정생활이 그토록 중추적인 것은, 가정생활이 교회, 즉 하나님의 가족에 대한 은유로서 기능하기 때문이다(벧전 4:7). 가족 관계의 돌봄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서로를 대하는지에 대한 표준을 제공한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 5:1–2). 심지어 그리스도 안에서는 서로에게 잘못을 행한 사람들일지라도 “주 안에서” 형제와 자매가 될 수 있다(몬 16절). 사람들을 잘 가르치며 가족을 돌보는 것은 교회 식구를 잘 돌보는 것이다(딤전 3:4). 가정의 식탁 교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가족 안에 있는 성찬의 식탁 교제를 준비시킨다. 가족들이 하나님의 거처가 되는 것처럼, 가족들은 또한 교회가 될 수 있다.

가족들의 신뢰의 삶은 그 구성원들로 하여금 항상 신뢰할 수만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게 준비를 갖추게 하고, 만일 그 구성원들이 결혼하기로 했다면 배우자와 연합하여 그들의 자녀를 준비할 것이다. 가족 구성원들이 다양성 속에서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자녀들이목격할 때, 자녀들은 자신의 방식만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것을 배운다. 가족이 우리를 버릴 때(시 27:10), 하나님이 대신해서 제공하는, 특히 교회 내에서(딤후 1:2; 딛 1:4)의 가족은 매우 필수적이다.

가족은 육체적 생계뿐만 아니라 감정적, 관계적 필요들도 키우고, 타인을 사랑하고 삶 속에서 의미를 찾는 법을 배우는 것과 같은 지적, 영적 필요들을 위한 안내를 제공한다. 이상적으로, 부모는 자녀들에게 말씀으로 영적 진리뿐만 아니라 삶으로 서로 간의 사랑과 존중을 가르친다. 하나님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명령하심과 동시에, 또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1, 4)라고 명령하셨다. 자녀들에게 첫 권위의 형상이 되는 부모는 하나님과 같은 첫 인상을 만들어 낸다. 만일 자녀들이 나중에 삶 속에서 부모님의 뜻과 하나님의 뜻 사이에 있는 갈등을 분별하여 알아본다면, 자녀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처럼 부모를 존중할 수 있다. 이런 영적 삶의 인격적인 발달에 의해 성장한 자녀들은 부모 때문에 존경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들의 부모와 친구가 된다.

가정생활은 제자도와 영성 형성의 첫 장소다. 지상 명령은 가정에서 시작된다. 부모는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도록, 그리고 부서지고 상처 난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총의 중개자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제자로 만들도록 훈련시킨다(마 28:19–20). 가족들은 자녀들을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함께 노력하도록—자녀들이 이웃이나 친지를 돕든, 혹은 한 가족처럼 공식적으로 자원 봉사를 함께하든—훈련시킨다. 이러한 타인을 함께 돕는 일은 또한 가족 구성원들을 위한 소위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낸다.

모든 부모-자식의 활동은 좋든 싫든 학습용 도구가 된다. 부모들은 하루 종일 자녀들에게 (말과 양식으로) 운동 능력을 향상하고, 바른 위생법을 실천하며, 학술적 우수성을 성취하고, 휴식과 금전 지출에 대해 선택하는 일과 같은 기술(技術)들을 가르친다. 이 많은 영역에서, 그리스도인 가족들은 문화가 지향하는 것과 반대로 나아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문화의 초점이 보다 많은 돈을 벌고, 개인의 사적인 목적 추구, 혹은 모든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성취하려는 것에 맞춰져 있을 때, 그리스도인 가족들은 그들의 재산을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데 쓰는 것을 초점에 둔다.

가족의 삶은 공적인 시선 바깥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의 감추어진 나사렛에서의 30년 삶이 보여 준 것처럼, 가족을 위해 보낸 시간은 가치를 지닌다. 장자로서, 그리고 아마도 아버지의 자리를 대신했던(만일 많은 사람이 추측하는 것처럼 요셉이 일찍 죽었다면) 예수는 날마다 열심히 일했으며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갔고, 아마도 마을 회당에서 가르쳤을 것이며, 가족들을 지도하고 훈육하셨을 것이다. 인류를 구원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온 예수는 일상적인 가정생활을 경멸하지 않았으며, 대부분 자신의 초기 삶을 이같은 중요한 일을 하면서 조용히 보내셨다.



적용


가족은 가족 구성원들이 생활의 기초 강좌들을 다룸으로써 인간 안에 있는 지혜와 내면의 힘을 키울 수 있는 체험 학습 교실이다. “내가 실패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나는 언제 화를 내는가?” “나는 언제 실망하는가?” “나는 언제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을 탐하는가?”

가족 내에서 제자도는 온종일 생겨난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일상적고도 어려운 상황들에서 부모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주목하기 때문이다. 또한 의도적인 제자도는 헌신과 축하의 시간(가족의 밤, 휴일, 생일, 뜰에 핀 첫 번째 꽃에 대한 즉흥적인 축제, 축복 나눔) 등 가족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생겨난다. 이런 일상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은 또한 알지 못했던 서로의 영적 재능들을 주목하게 된다.

가정생활은 시련 속에서 인도하심을 위해, 수입을 위해, (어느 날은) 소리를 지르는 대신 은혜를 위해 기도하도록 가족들을 끌어갈 과제를 발견한다. 가족 구성원들은 과도기를 거칠 때, 하나님께 계속해서 질문한다. “지금 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 어떤 걸까요? 그들의 인생에서 이처럼 기분이 좋지 않은 시기에 말이죠.” “그러므로 용기와 인내,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성례의 요소들이다. 인생의 보상이 더 이상 확실하지 않을 때에도 사람이 인생에서 사랑을 표현하면서 계속 일하는 것이 인내이며, 감히 그러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용기이다.”

가정생활의 또 다른 도전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의 품성 성장이 겨우 눈에 띌 정도로 매우 평범하고 일상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성장은 육체의 성장, 학문이나 운동의 성취와 비교해 볼 때 시시해 보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가정생활은 우유를 엎지르거나 잠 못 드는 밤에 하나님의 고요하고 작은 목소리가 스며드는 소소한 사건들로 이루어진 영적 여정으로 날마다 기념될 필요가 있다. 가정은 “일상의 성례를 배우는 학교가 된다. 다른 사람들을 돌보는 일들은 언제나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여기에 그들을 부름은 또한 아름다움을 아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다.” 가족 구성원들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여건 속에서 하나님 찾기를 실천할 때(골 3:17), 그들은 그 순간을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시 118:24)라고 말하면서 살 수 있다.

이런 초점이 없이는 어린아이나 혹은 노인을 돌보는 일상의 일들이 신성하기보다는 억압으로 여겨질 수 있다. 고역과 권태를 넘어가는 일은 녹초가 되었을 때,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기를 지속하고, 거칠게 말하는 것이나 빈정거림 속에서 침묵하는 것이 당연한 듯할 때,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말하는 것이 필요하다(잠 3:5; 엡 4:15).

장난감을 수선하고, 기저귀를 갈거나 음식을 요리하는 등의 일들 앞에서 하나님의 동행하심과 우리가 얼마나 이런 일상 가운데 하나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지를 반영하는 것이 현명하다. 로렌스(Lawrence) 형제가 수도원 부엌에서 일하면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일하면서 짧은 기도를 반복할 수 있다. “주여, 당신과의 동행을 계속할 수 있는 은혜를 주소서. 저와 함께 일하시며, 저의 일을 받으시고, 저의 모든 사랑을 가지소서.” 일을 마친 후에, 우리는 도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감추어진 방법들로 다른 가족 구성원들을 돕기 위해 우리의 수고를 사용해 주실 것을 요청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하나님과 계속해서 나눔으로써, 그분의 현존은 우리의 가족들이 감지하는 실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