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MARRIAGE
정의
오늘날 현대 문화 속에서 결혼은 대개 세속적인 측면에서 한 쪽의 배우자가 관계를 청산하기로 결정하면 법적으로 파기할 수 있는 국가에 의한 계약상의 합의로 정의된다. 세속적인 사고의 틀 안에서 바라본다면, 결혼은 본질상 계약적이다.
그러나 성경적 사고에서 결혼은 언약적이며, 신성한 것이다. 결혼은 거룩한 것이다. 거룩하다는 의미는 “구별된다”는 뜻이다. 결혼은 다른 모든 형태의 인간의 결속과 구별된다. 생물학적 혈연관계에 뿌리를 둔 가족 유대와 달리, 결혼은 그 기초를 하나님 앞에서 상호 간에 맺은 약속에서 발견한다. 결혼은 깨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두 사람이 영적으로, 성적으로, 사회적으로 연합하는 배타적인 관계다.
세속적 혼인 관계와 거룩한 혼인 관계 사이에는 몇 가지 주요한 차이점이 있다. 세속적인 혼인 관계는 두 사람의 감정에 따른 사적인 일이므로, 그들의 사랑이 식어지면 계약은 법적으로 깨질 수 있다. 세속적 혼인 관계는 결혼이 하나님에 의해 정립되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거부한다. 하나님이 남자에게 한 여자를 데려왔던 창세기의 기사(창 2:22)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다. 한편 세속적 혼인 관계는 결혼에 있어서 성별에 근거한 보완적 관계의 필요성을 무시한다. 그리하여 세속적 사고 체계 내에서 이성애는 선택 사항일 뿐이다.
반대로 거룩한 혼인 관계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다. 거룩한 혼인 관계는 남편과 아내의 서약에 따른 공적인 일이므로, 설사 그들의 사랑이 식어진다 해도 언약은 여전히 유효한 채로 남아 있다. 거룩한 혼인 관계는 그 자체를 하나님으로부터 원인을 두는 도덕적 제도로서 가족의 기초로 기능한다고 이해한다. 거룩한 혼인 관계는 엄밀하게 그리스도와 신부인 교회와의 혼인을 반영하기 때문에 영원한 결속이다(엡 5:32).
에베소서 5장 23절에서, 사도 바울은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고 설명한다. 극소수의 그리스도인에게만 이것이 가르쳐졌다. 대다수 그리스도인에게는 에베소서 5장 23절이 남편을 “가정”의 머리라고 말하는 것으로 믿도록 잘못 가르쳐졌다. 성경을 높이 평가하는 보수적인 사람들 중에는 직접 에베소서에서 이 구절을 인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아내의 머리”라는 성경의 구절을 간과한다면, 에베소서 5장 22–33절에 드러난 결혼의 이미지는 여전히 감추어질 것이다. 그 결과로 이 구절의 의미를 종종 너무 많이 잃어버리게 된다.
성경은 결혼이 “커다란 비밀”이라고 한다(엡 5:32). 이 비밀은 하나 됨의 신비다.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가 교회와 하나 됨을 반영하는 특별한 종류의 하나 됨으로 들어간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된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처럼, 아내는 남편의 몸이 된다. 에베소서의 언어는 은유적이다. 머리와 몸의 은유적 이미지와 아내와 남편의 연합은 그리스도가 교회와 연합하는 신비를 드러낸다. 은유적으로 말하자면, 남편(머리인)과 아내(몸인)가 “한 육체”가 되는 것이다(엡 5:31). 그러므로 사도가 “남편들도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엡 5:28)라고 말하는 것은 지당하다.
에베소서 5장 23절에서 발견되는 머리[헬라어로는 케팔레(kephale)]라는 단어의 비유적인 사용이 현대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었다. 일부의 학자들은 헬라어 케팔레가 “권위”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케팔레가 “원천”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말로 하면, 한편에서는 에베소서 5장 23절이 의미하는 바가 남편은 가정의 “권위”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케팔레가 의미하는 바를 아담의 육체적 옆구리가 주님이 창조한 하와의 원천이었던 것처럼 남편은 아내의 “원천”이라고 하는 것이다. 최근의 논쟁을 초월하는 한 방법은 케팔레란 단어를 머리의 내면적 형상을 전달하는 수단에 대한 은유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몸(아내)과 연결된 머리(남편)의 내면적 형상은 남편과 아내의 연합인 “한 몸”의 신비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또한 그것은 교회(그리스도의 몸)가 그리스도 예수(교회의 머리)와 가진 굉장한 연결을 드러낸다.
성경은 남편을 아내의 “주”로 말하지 않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편이 아내의 “구세주”가 아니라는 말이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권세를 갖는다. 에베소서 5장 23절에서 사도는 남편을 “아내의 머리”라고 했지, 아내의 주나 혹은 구세주라고 말하지 않았다. 머리가 되는 권위는 하나 됨의 실재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주권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와의 하나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주권은 그의 리더십과 권세와 권위를 보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구원자 됨은 그의 몸과의 하나 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과 하나 되는 것은 그가 머리가 되는 권위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그리스도가 신부인 교회와 하나 됨 속에서 함께하는 것처럼, 남편은 자신의 아내와 하나 됨 속에서 함께한다.
적용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머리와 몸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으로 신성한 결혼을 이해한다. 그것은 두 머리, 혹은 두 몸이 부부로 연합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적인 면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결혼이란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연합이다. 비록 남편은 아내의 “머리”일지라도 그녀의 구원자나 주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수만이 주님이요, 구원자다(눅 2:11). 이는 결혼 생활에 있어 그 권위가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뜻한다. 남편과 아내는 모두 그리스도에게 그들의 결혼 생활에 대한 지혜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는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골 2:3)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는 서로의 경험과 학식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그들 자신을 맡겨야 한다. 그리스도는 성경적 결혼 생활의 영적 안내자다. 남편과 아내는 모두 직접 그리스도에게로 다가갈 수 있다(히 4:14–16).
결혼의 신비는 남편과 아내, 즉 두 개별적인 인간이 신비스럽게 “한 육체가”(엡 5:31) 되는 것이다. 그들의 하나 됨은 결혼 생활 속에서 희생적인 복종 및 사랑과 존경의 역동성을 통해 생겨난다.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엡 5:25) 하고,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엡 5:22) 하고, “자기 남편을 존경”(엡 5:33)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내는 남편의 영향 아래 복종하여 자신의 삶을 남편에게 순응시키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 그녀에 대한 육체적 우세를 이용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벧전 3:7). 대신에 남편은 자신의 사회적 이점을 활용하여 자신의 아내가 확실히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과 개성에 있어) 존중 받는 만큼 많은 존중을 받도록 해야 한다(요 5:23). 남편은 자신의 육체에 행하는 것처럼 아내를 격려하고, 돌봄으로써 사랑하며, 아내는 남편을 자신에게 행하는 만큼 높이 대함으로써 존경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결혼 생활에서 남편과 아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 됨을 촉진할 수 있는데, 특별히 성적인 결합을 통해서 가능하다. 결혼 생활의 성경적 본보기 안에는 두 배우자가 서로의 몸에 대한 권위를 가진다. 사도 바울은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고전 7:4)라고 했다. 나아가 남편과 아내는 함께 기도하고, 함께 결정하고, 함께 자녀를 양육하며, 함께 주님을 예배하고, 함께 말씀(특히 마 18:15–20에서 발견되는 갈등의 해결 과정)을 적용하며, 함께 삶을 기뻐하고, 서로 사랑 가운데 진실을 말함으로써 하나 됨을 깊이 있게 할 수 있다.
아마도 부부의 하나 됨을 이루는 데 가장 큰 방해는 개인적인 이기심일 것이다. 이기심은 솔직하게 다가오는 것을 거절하며,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는 행위와 습관을 뉘우치지 않고, 용서를 거절하는 것과 같은 무수히 많은 악한 방법으로 나타난다. 거꾸로 말하면, 부부의 하나 됨을 성취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도움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결혼 생활 가운데 황금률을 적용함으로써 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