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구하다a
rt'[;(6279, 아타르)
기도하다, 간청(구)하다
아타르(동사)는 기본어근이며, '기도하다 pray, 탄원하다, 간청(구)하다 entreat'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0회 나온다.
동사 아타르는 기도를 나타내는 어휘 중에 다소 보편적이지 않은 단어이다. 이 단어의 아랍어 동족어 아타라는 '희생제사를 드리기 위해 도살하다'를 의미한다. 아마도히브리어 단어 아타르의 기초는 희생제사일 수도 있다(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I, p. 380 and Eichrodt,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I, p. 172).
출 8:28에서 아타르는 희생제사와 관계가 있다. 이 동사는 70인역본에서 종종 유코마이(기도하다, 출 8:10)와 (니팔형) 에파쿠오(호의를 가지고 듣다)라고 번역된다. '탄원한다'는 말은 '열심히 기도하다, 간절히 요청하다, 간절히 원하다, 애원하다'를 의미한다.
아이히로트(Eichrodt)가 입증하는 바와 같이 기도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은 "공허한 애감(pathos)이나 과장된 아첨의 어떤 기미"도 없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오히려 기도의 특징은 여호와를 향한 어린 아이 같은 단순, 성실, 확신이다". 나아가 고대 근동의 기도 문헌과 대조해 볼 때 "제사 기도와 사적인 개인 기도 사이에 다른 점"이 없다(Eichrodt,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I, p. 175).
성경에서 기도는 자발적이고, 개인적이고, 필요에 의해 기도하게 되며, 때와 장소에 제한 받지 않는다. 프리젠(Vriezen)이 주목한 바와 같이 "어떤 곳(창 24장), 하루 중 어느 순간이든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Outline of Old Testament Theology, p. 279).
이스라엘의 예배에서 희생제사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지시함에도 불구하고 고정된 기도식문이 없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기도는 자발적이어야 한다.
아타르의 20회 용례 중에서 8회는 출 8-10장에서 재앙에 대한 신학적 논쟁에서 나온다(출 8:8-9, 출 8:28-30, 창 10:17-18). 출 8:28에서 희생제사는 탄원의 기도와 관계되어 있다. 이와 같은 관계는 이 재앙 이야기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것 같다. 희생제사 행위는 삼하 24:15(다윗은 선지자 갓의 지시에 따라서 재앙을 그치게 해 달라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와 아마도 삼하 21:14(사울과 요나단의 매장에 관하여)에서 간청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희생제사가 간청의 기도에 항상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그 예로서 요단 동쪽의 두 지파와 반 지파는 전쟁 중에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저희가 싸울 때에 하나님께 의뢰하고 부르짖음을 하나님이 들으셨음이라"(대상 5:20). 제사가 수반되지 않은 간구 기도의 또 다른 예는 바벨론 포로 동안에 므낫세가 드린 통회의 기도이다(대하 33:12-13, 대하 5:19). 이 구절에서 아타르는 할라(진정시키다), 카나(겸손한 태도를 취하다, 니팔형), 팔랄(기도하다, 히트파엘형), 그리고 명사 테힌나(탄원, 간원)와 나란히 사용된다.
아타르의 능동형(칼형과 히필형)은 기도가 성실한 탄원으로 여호와께 드려질 때 기도와 관계를 가진다.
수동태(니팔형)는 여호와의 은총을 받는 기도자, 그리고 기도자의 감사와 겸양의 놀라운 표현에 대해 사용된다.
창 25:21에는 중보 기도가 나온다: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칼형)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음으로(니팔형)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참조: R. B. ALLEN; BDB).
[동의어] (관련성구)
vq'B;(1245, 바카쉬)
찾다, 요구하다, 원하다, 묻다
바카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찾다, 요구하다, 원하다, 묻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25회 나오며, 피엘형과 푸알형으로만 사용되었다.
1. 피엘형에서
(a) 바카쉬는 '알기 위해 묻거나 발견하기 위해 찾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삿 6:29, 왕하 2:17, 렘 5:1, 겔 34:6, 전 3:6, 전 8:7, 창 37:15, 창 37:16, 수 2:22, 삿 4:22, 삿 14:4, 삼상 9:3 등.
(b) 바카쉬는 '확보하거나 획득하기 위해 찾거나 요구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 민 16:10에서 제사장 직분을 얻기 위해 구하는 것, 삼하 3:17에서 다윗을 왕을 삼기 위해 구하는 것을 언급한다.
② 아무의 생명을 취하기 위해 찾는 것, 출 4:19, 삼상 20:1, 삼상 22:23, 삼상 23:15, 시 35:4, 시 38:12, 시 40:14 등.
③ 목적하거나 지향하거나 시행하는 것, 민 35:23, 삼상 24:10, 삼상 25:26 등.
(c) 바카쉬는 '얼굴을 구하다(찾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① 통치자들의 얼굴, 왕상 10:24, 잠 29:26.
②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얼굴, 호 5:15, 대상 16:11, 대하 7:14, 시 24:6, 시 27:8, 신 4:29, 습 1:6, 습 2:3, 호 3:5, 호 5:6 등.
(d) 바카쉬는 '요구하다, 몹시 바라다, 원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대상 21:3, 겔 7:26, 사 1:12, 느 5:12.
배상을 요구하는 것, 창 31:39, 창 43:9, 삼상 20:16, 삼하 4:11, 겔 3:18, 겔 3:20, 에 2:15, 느2:4, 에 7:7, 스 8:23 등.
2. 푸알형에서 '찾아지다, 조사되다'를 의미한다. 렘 50:20, 겔 26:21, 에 2:23.
(참조: BDB).
[참고 - 바카쉬(vq'B; , 1245). 이 어근은 본래 '존재하거나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을 어떤 사람이 아주 열심히 찾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의도는 그 대상을 발견하거나(마차[ax;m; , 4672]) 획득하는데 있다(출 4:19). 이 구하는 바 대상은 설명, 혹은 이해가 가능한 것일 수 있으며, 또한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바카쉬의 구체적인 의미는 주어진 문맥 안에 있는 그 대상에 의해 결정된다. 이단어와 가장 유사한 단어인 다라쉬(vr'D; , 1875, 참조)와는 달리, 구하는(바카쉬) 행위는 거의 인식되지 않는다(그렇지만 삿 6:29을 참조하라). 이 단어와 병행되는(따라서 같은 의미를 지닌) 단어들로는 라답(#d'r; , 7291, 추구하다 pursue), 샤알(la'v; , 7592, 묻다 ask), 파카드(dq'P; , 6485, 방문하다 visit), 바하르(rj'B; , 977, 선택하다 choose) 등이 있다(참조, Ugaritic bqt, UT 19:no. 505. Phoenician bqsh, KAI, p.5).
바카쉬의 가장 의미심장한 신학적 주제는 신 4:29에 표현되어 있는 개념에서 유래한다(참조, 신 6:6, 마 22:37, 다라쉬: vr'D; , 1875). 이 구절에 의거하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저들의 삶의 제 1원리로서 자기를 사랑하고 섬기도록 묶으신 것이다. 바로는 모세(아론)의 요청과 하나님께서 그 조건들을 규정하셨다는 사실 사이의 관계를 인정할 수 없었다(아니,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출 10:11). 그래서 그는 남자들이 그들의 하나님을 "예배하러" 가는 것은 기꺼이 허용해 주었지만, 그들의 나머지 요구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부당한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그가 규정해준 장소와 방법으로 그를 찾으라고 백성들에게요구한다(출 33:7, 참조, 사 1:12). 이 "찾음"의 대상은 궁극적으로는 여호와이며(시 24:6, 습 1:6) 직접적으로는 그의 언약적 규정(암 8:12, 시 34:14 [H15]), 약속(겔 7:26), 그리고 요구(습 2:3, 미 6:8)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구하는 자들"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하여(레 19:31), 그들에게서 참 생명을 빼앗아버리기 때문에, 그들은 중벌을 받게되는 것이다(신 13:10 [H11], 참조, 창 9:5). 경우에 따라서 이스라엘은 이런 거짓 지도자들에게 자신을 내어맡기곤 했지만,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받았다(렘 29:13, 렘 50:4, 신 30:1-10). 하나님(겔 7:25, 호 5:6), 그의 지략(겔 7:26), 그의 말씀(암 8:12)에 대한 그들의 거짓된 추구는 그들이 깨끗한 손(시 77:2 [H3], ngr)과 정결한 마음(시 24:6)으로 그를 찾지 않았기 때문에, 헛된것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자기의 은총에 따라 포로로 잡힌(심판받은) 백성들을 찾으시어, 그들에게 옛 약속을 상기시키고(사 45:19) 회개하고 회복하도록 그들을 일깨우셨다(사 51:1, 사 65:1). 신약성경은 하나님께서 갑자기, 혹은 홀연히 그의 성전에 나타나셨을 뿐만 아니라(말 3:1, 요 2:13이하, 히 12:22-24, 히 9:1-28), 이방인들을 참 생명으로 일으키셨다(슥 8:21-22, 렘 31:31이하)고 말함으로써, 앞에 상술한 의미를 충분히 입증해준다(롬 9:30, 롬 10:20). '구약성경의 예언들이 이처럼 영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게는 이것이 문자적으로 성취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롬 11:26)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R.L.H).
자기를 죽이려고 "마침" 찾고 있던 사람들을 피해 도망친 모세가(출 3:15, 출 4:19) 하나님과 대면함으로 자기 생명을 구하였다(출 4:24)는 사실은 주목할만 하다. 즉, 언약에 대한 불순종(모세는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음)은 사형을 받을만 했으며, 또한 이 말씀의 교훈은 자기 자녀를 언약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살인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에 있는 (것 같다)(참조, 창 9:5). 하나님께서 언약을 위반한 사람의 생명을 "찾는(요구하는)다"는 사상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체결하신 언약들(예, 생명에 대한 창조적인 언약, 창 9:5, 모세의 언약, 겔 3:18, 20)과 하나님에 의해 인정된 언약들(삼상 20:16, 삼하 4:11) 모두에 다 적용된다. - L.J.Carr.]
[바카쉬는 '찾다', '구하다' seek, search, '의견을 묻다' consult를 의미한다. 이 동사는 우가릿어, 페니키아어, 히브리어(성경과 성경 이후의 히브리어)에만 나온다. 이 단어는 성경의 모든 시대의 문헌에 약 220회 나온다. 바카쉬는 기본적으로 잃어버린 물건이나 그 소재지가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을 발견하려고 탐색하는 것을 의미한다. 창 37:15에서는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네가 무엇을 찾느냐"라고 묻는다. 이런 의미는 아직 지정되지 않은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한 집단에서 찾아내다', '선택하다'라는 특별한 뉘앙스를 지닌다. 그 예가 삼상 13:14에 나온다.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어떤 사람의 얼굴을 찾는다는 것은 그 사람 앞에 나아가기를 '애쓰다' seek 혹은 그 사람으로 총애하는 경청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천하가 솔로몬의 얼굴을 보기를 '원했다'(왕상 10:24). 이와 비슷한 의미에서, 어떤 사람이 성전에서 기도 드릴 때에 여호와 앞에 서서 그의 얼굴을 '구했다'(삼하 21:1, 한글개역-"간구하매"」.
'얻으려고 애쓴다', '구한다' seek to secure라는 의미는 어떤 소원에 대한 추구나 계획의 완성을 강조한다. 모세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독특한 지위에 대해 반항한 레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너희가 오히려 제사장의 직분을 구하느냐"(민 16:10). 이러한 용법은 '의도하다' aim at '~에 전념하다' devote oneself to '~에 관심을 가지다' be concerned about와 같은 정서적인 색채를 띤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의 아들들(인간)에게 질문하신다.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시 4:2). 사람은 제의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도우심을 얻기 위해 간구한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대하 20:4). 이런 용법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그 배경에 지적인 요소가 깔려있다. 즉, 여기에는 정보를 구하고자 하는 것이 없다. 이에 대한 예외는 삿 6:29의 용례이다.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이 동사가 하나님에게서 정보를 구한다는 의미로는 매우 드물게 사용되었다(출 33:7). 이와 유사한 의미로 사람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삼하 21:1). 여기서 바카쉬는 분명히 정보를 구하는 것(인식의 추구)에 대해 사용되었다. 또한 지혜의 추구와 비교하라(잠 2:4).
얻으려고 애쓴다는 의미는 사람의 생명(네페쉬[vp,n< , 5315])을 찾는 것에 대해 사용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출 4:19)라고 말씀하셨다. 바카쉬는 네페쉬(vp,n< , 5315)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와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즉 바로는 "모세를 죽이려고 찾았다" sought to slay Moses(출 2:15). 이런 어감은 오직 2회, 복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에 적용된다. 예를 들면 시 122:9,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네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일반적으로는 다라쉬[vr'D; , 1875]가 복을 구하는 것에 대해 사용된다).
바카쉬는, 화자(話者)가 그것에 대하여(실제로, 혹은 가상적으로) 법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에 대해 책임을 지다'라는 의미로 약 20회 나온다. 창 31:39에서 야곱은 야수에게 물려 찢긴 가축에 대해 "내 손이 당신에게 그것을 요구했다"(한글개역-"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고 지적한다. 바카쉬는 매우 드물게 장소를 찾는 것에 대해, 혹은 한 장소로 향하여 움직이는 것에 대해 사용되고 있다. 요셉은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었다"(창 43:30).
이 동사는 신학적으로, 여호와 앞에서 장소를 찾는 것(성전 안에서 여호와 앞에 서서 그의 축복을 얻기 위해 구함) 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태에 대해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다라쉬[vr'D; , 1875] 만나리라"(신 4:29). 이 동사가 다라쉬(vr'D; , 1875)와 동의적 병행구로 사용된 경우에, 이 두 동사는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 넬슨의 구약 해설 사전]. (p.299*)
[동의어] (관련성구)
hl;j;(2470, 할라)
약하다, 병들다
1. 할라(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약하다, 병들다, 아프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59회 나온다.
(a) 칼형에서 '병들다, 약하다'를 의미한다.
창 48:1, 겔 34:16 등 여러 구절에서 '병에 걸린' sick과 '약한' weak을 구별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후자는 전자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삿 16:7, 삿 16:17에서는 '병'의 의미는 포함되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약해지는 것' to be weak(코아흐, 힘 strength의 반대)은 '다른 사람처럼', 혹은 '어떤 사람같이' 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동사의 다른 용법들은 언제나 어떤 종류의 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으나 이러한 해석이 반드시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사 57:10에서 그 단어는 아마도 오랜 여행에서 오는 자연적인 결과에 대해 사용되고 있다(ASV와 RSV는 "약해지다" be faint, KJV "슬퍼하다" grieved).
병들게 되는 것에는 육체적 상해 혹은 상처, 즉 타격으로(잠 23:35 KJV; ASV와 RSV는 "상처내다" hurt), 전쟁 부상으로 인한(왕하 8:29), 떨어져서 입은(왕하 1:2) 상처를 포함하고 있다.
이 단어는 그 원인에는 상관없이 때때로 죽음을 초래하게 하는 '병'을 뜻하는 일반적 의미(영어에서처럼)로 사용된다(예: 야곱, 창 48:1. 히스기야, 왕하 20:1).
이 단어는 아사의 발(왕상 15:23)에 대한 것같이 특별한 질병을 가리켜 더욱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이 단어는 희생제물에 적합하지 않는 동물을 나타내는데 사용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말 1:8, 말 1:13).
이 동사는 또한 사랑으로 병든 소녀처럼(아 2:5, 아 5:8) 가슴 혹은 마음의 병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사울은 어떤 누구도 자기에게 대하여 아파하지, 즉 슬퍼하지 않았다고 불평하였다: "너희가 다 공모하여 나를 대적하며 내 아들이 이새의 아들과 맹약하였으되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고 나를 위하여 슬퍼하거나 내 아들이 내 신하를 선동하여 오늘이라도 매복하였다가 나를 치려 하는 것을 내게 고발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삼상 22:8).
(b) 니팔형에서 '자기 자신 병들다, 약해지다'를 의미한다.
병의 비육체적 형태는 니팔형에서 더욱 명백하다. 아모스는 시온에서 편안하여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슬퍼하지(병에 걸리지) 아니한 자들에 대하여 언급하며(암 6:6), 이사야는 "병든 날" day of being sick("슬픈 날" day of grief로 번역됨, 사 17:11)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니팔형은 또한 "병든 자" diseased(겔 34:4)와 "연약한 자" faint(렘 12:13)에도 사용하고 있다. 후자의 언급에서 예레미야는(가시를 거두게 되는) 밀을 심는 노력에 대하여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KJV와 ASV는 "저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다"로 번역하고 있으며, RSV는 "자신들을 지치게 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이 단어의 니팔형의 분사는 상처 혹은 타박상을 언급할 때 '심한' severe의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렘 10:19).
(c) 피엘형에서'병들게 하다'를 의미한다.
피엘형의 용법은 신 29:22에서 사역적이다: "너희 뒤에 일어나는 너희 자손과 원방에서 오는 객이 그 땅의 재앙과여호와께서 그 땅에 유행시키시는 질병을 보며".
피엘형의 유일한 다른 용법은 "연약"(시 77:10)으로 번역된 부정사적 용법이다: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연약함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d) 푸알형에서 '약해지다'를 의미한다.
사 14:10, "그들은 다 네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도우리 같이 연약하게 되었느냐 너도 우리 같이 되었느냐 하리로다".
(e) 히필형에서 '병들게 하다, 아프게 하다'를 의미한다.
미 6:13은 '아픈' sore 혹은 '혹독한' severe의 의미에서 "나도 너를 쳐서 중히 상하게 하였다"로 이해되어야 할 것 같다(RSV는 여기에서 히브리 원문을 부인하고 있다). 히필형은 감정("소망이 더디 이루게 되면 그것이 마음을 상하게 하나니", 잠 13:12)과 술로 인한 병(호 7:5)을 언급하는 데서 사용되고 있다.
사 53:10(KJV)은 "그를 상하게 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였으며 하나님은 그를 괴롭게 하셨다". 즉 정신적 고통의 의미에서 "하나님은 그를 아프게 하셨다"로 판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육체적 의미가 될 수 있다. 즉 "하나님은 그를 상하게 하셨다". 이것은 언제나 전쟁 부상으로 "나는 상처를 입었다(아프게되었다)"라는 의미에서 3회 사용된 것으로 그에 상응하는 수동태(호팔형)에 비견되고 있다(왕상 22:34, 대하 18:33, 아합; 대하 35:23, 요시아).
(f) 히트파엘형에서 '자신을 병들게(아프게) 하다'를 의미한다.
암논은 과도한 욕망으로 스스로를 병들게 하였으며(삼하 13:2), 따라서 그는 병든체 하였다(삼하 13:5-6).
(참조: C. P. WEBER; BDB).
2. 할라는 '간절히 원하다, 간청하다, 호의를 구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16회 나온다.
이 단어는 16회 사용되며 반드시 피엘어간에서 '페네'(~의 면전에 the face of)와 더불어 쓰이고 있다. '페네'와 함께 사용되는 이 단어 의미는 '간청하다' entreat, '~의 호의를 구하다' seek the favor of를 뜻한다.
이 단어의 16회 용례 중 13회는 하나님에게서 추구되어지는 호의를 의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위험의 위협에서 자비, 혹은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내포하고 있다. 위험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손(출 32:11, 금송아지의 결과로서) 혹은 적의 손(왕하 13:4, 여호아하스에 대한 시리아인들)일 수 있다.
다른 것에 적용되는 것으로, 소발은 욥에게 만일 욥이 '선하다'면 사람들이 그의 호의를 청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욥 11:19, KJV "너에게 청원하리라" make suit unto you). 잠 19:6에는 많은 사람들이 너그러운 자(KJV, 왕)에게 호의를 구한다고 언급되어 있다.
시 45:12에 의하면 부한 자도 왕의 신부에게 은혜를 구할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는데 그는 히 1:8, 히 1:9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확인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페네'와 더불어 함께 사용되는 이 변화하지 않는 용법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 관용구가 어떤 사람의 얼굴을 때려서 그를 진정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것은 너무 극단적인 어원 연구로 인한 견해인 것 같다. 이 숙어의 기원은 분명하지않으나 그 의미는 용법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명백하다.
(참조: H. WOLF; BDB).
[동의어] (관련성구)
@n"j;(2603, 하난)
호의(은혜)를 베풀다, 자비롭다, 불쌍히 여기다
1. 하난(동사)은 기본어근이며, '호의(은혜)를 베풀다, 자비(은혜)롭다, 불쌍히 여기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80회 나온다.
(a) 칼형에서 '호의(은혜)를 베풀다, 자비롭다, 불쌍히 여기다'를 의미한다.
하난은 칼형으로 사용된 용례들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용례들, 즉 대략 41회 용례들이 여호와를 주어로 취한다. 청원의 말, '혼네니'(나에게 자비로우소서)는 시편에 19회 나온다. 시편기자는 여호와께 외로움(시 25:16, H17), 고통(시 31:9, H10), 죄과(시 51:1, H3)에 대하여 자기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간청한다. 죄과에 대해서 그가 구하는 은총은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고발을 말소시켜 달라는 것이다. 사 33:2을 참조하라.
여호와는 자비롭게 야곱에게 자녀를 주시고(창 33:5) 그를 번영하게 하셨다(창 33:11). 베냐민에게 내린 요셉의 축복(창 43:29)과 아론의 축복(민 6:25)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태도를 필요로 한다.
아모스(암 5:15)는 청중들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도록 의를 세우라고 촉구한다. 요컨대 여호와는 그가 선택한 사람들에게 자비롭게 행하신다는 점에 있어서 주권자이시다(출 33:19).
(b) 니팔형에서 '불쌍히 여기심을 받다, 동정의 대상이 되다'를 의미한다.
렘 22:23, "레바논에 거하여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c) 피엘형에서 '은혜(자비)롭게 하다'를 의미한다.
잠 26:25에서 말이 외적으로 친절하거나 동정적인 말에 대해 사용되었다.
(d) 포엘형에서 '자비를 베풀다, 불쌍히 여기다'를 의미한다(잠 14:21, 시 102:14).
(e) 호팔형에서 '은혜 받다(입다)'를 의미한다(사 26:10, 잠 21:10).
(f) 히트파엘형에서 '은혜(자비, 은총)를구하다'를 의미한다.
히트파엘 어간은 약속의 땅을 보게 해 달라고 한 모세(신 3:23)와 성전 봉헌 때의 솔로몬(왕상 8:33, 왕상 8:47, 왕상 8:59, 왕상 9:3, 대하 6:24, 대하 6:37)과 시편기자(시 30:8 H9, 시 142:1 H2) 그리고, 야곱이 더불어 씨름한 천사에게 간구하는 것을 인용한 호세아(호 12:4 H5)가 하나님께 탄원할 때, 사용하였다. 빌닷에게서 하나님께 탄원하라는 충고를 받은 욥(욥 8:5)은 비록 자기가 의롭긴 하지만, 이 방법만이 그가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길일 것이라는 점을 시인한다(욥 9:15).
2. 하난(동사)은 기본어근이며, '싫다, 몹시 싫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욥 19:17에서 1회 나온다: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
(참조: E. YAMAUCHI; BDB).
[참고 - 하난(@n"j; , 2603). 아카디아어 동족어로는 '호의를 베풀다' grant a favor라는 뜻을 지닌 에네누(en?nu), 하나누(han?nu)가 있고 우가릿어 동족어로는 '자비롭다' be gracious, '호의 있다' favor라는 의미를 지닌 hnn이 있고(UT, 19: no. 882), 아랍어 동족어로는 '동정을 느끼다' feel sympathy, compassion를 의미하는 한나(hN;j' , 2584)가 있다.
이 단어는 칼 어간으로 56회, 힛파엘 어간으로 17회, 호팔 어간으로 1회, 피엘 어간으로 1회, 폴렐(Polel) 어간으로 2회, 그리고 니팔 어간으로 1회 사용되었다.
동사 하난(@n"j; , 2603)은 어떤 사람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주어야겠다고 진심으로 느끼는 반응을 묘사한다. 이 동사가 '굽히다' bend, '기울이다' incline, 즉 '겸손하게 굴다'라는 의미를 지닌 두 글자 어근에서 파생되었다고 한 압-토마스(Ap-Thomas)의 주장은 신빙성이 없다. 플라크(Flack)에 의하면, 이 동사는 '윗 사람이 자비롭게 대해 달라고 실제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아랫 사람에게 행하는 행동'을 묘사한다고 한다.
이전의 연구에 대해 반발하여, 노이바우어(Neubauer)는 그의 최근의 전공 논문에서 이 동사 의미를 신실한 종이나 민족을 구원하고 도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간섭으로 정의내린다. 이 때 그는 은혜와 사랑보다는 오히려 충성에 역점을 둔다. 그가 이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이것을 사회적 관계에서부터 신학적 관계에까지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하난(@n"j; , 2603) 및 그 파생어들의 여러 용법에서 이런 의미를 읽어내려는 그의 시도는 결국 무리한 해석을 낳게 한다.
70인역본은 이 동사를 오이크테이레오(헬3627, 불쌍히 여기다 pity나 동정심을 갖다 have compassion), 엘레오(헬1653, 자비심이나 동정심을 보이다 show mercy or sympathy)로 번역하거나, 히트파엘의 경우 데이스다오(deisthao?, 탄원하다)로 번역한다.
이 동사는 신학적 문맥들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혹은 세속적 문맥들에서도 사용된다. 이 동사는 종종 '빈궁한 자에게 친절을 보이다' show kindness to the poor and needy라는 의미를 지닌다.
욥은 친구들에게 "나를 불쌍히 여기라 나를 불쌍히 여기라"고 간청한다(욥 19:21).
히트파엘 어간은 요셉이 자기들에게 간청하였음을 형제들이 회상했다고 언급하는 창 42:21에서처럼, '탄원하다' beseech를 의미한다. 수리아의 두령은 엘리야에게 자기의 목숨과 자기 군사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하였다(왕하 1:13). 에스더는 왕에게 눈물로 간청하였다(에 8:3, 참조, 에 4:8).
렘 22:23에 나오는, 니팔형으로 보이는 '네한트'는 70인역본, 페쉬타역본 그리고 타르굼에 의해서 알 수 있듯이 동사 아나흐(jn'a: , 584)에서 파생된 한 어형을 잘못 기록한 본문상의 오류인 것같다. 현대 역본들은 70인역본의 카타스테낙세이스(katastenaxeis)에 따라서, '너는 괴로와 할 것이다' you will groan로 번역한다.
이 단어가 칼형으로 사용된 용례들 중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용례들, 즉 대략 41회 용례들이 여호와를 주어로 취한다. 청원의 말 혼네니(나에게 자비롭다 be gracious to me)는 시편에 19회 나온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외로움(시 25:16 [H17]), 고통(시 31:9 [H10]), 죄과(시 51:1 [H3])에 대하여 자기에게 은총을 보여달라고 간청한다. 죄과에 대해서 그가 구하는 은총은 하나님께서 그에 대한 고발을 말소시켜 달라는것이다. 사 33:2을 참조하라.
여호와는 자비롭게 야곱에게 자녀를 주시고(창 33:5) 그를 번영하게 하셨다(창 33:11). 베냐민에게 내린 요셉의 축복(창 43:29)과 아론의 축복(민 6:25)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태도를 필요로 한다.
아모스(암 5:15)는 청중들에게,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도록 의를 세우라고 촉구한다. 요컨대 여호와는 그가 선택한 사람들에게 자비롭게 행하신다는 점에 있어서 주권자이시다(출 33:19).
히트파엘 어간은 약속의 땅을 보게 해 달라고한 모세(신 3:23)와 성전 봉헌 때의 솔로몬(왕상 8:33, 47, 59, 왕상 9:3, 대하 6:24, 37)과 시편 기자(시 30:8[H9], 시 142:1[H2]) 그리고, 야곱이 더불어 씨름한 천사에게 간구하는 것을 인용한 호세아(호 12:4[H5])가 하나님께 탄원할 때, 사용하였다. 빌닷에게서 하나님께 탄원하라는 충고를 받은 욥(욥 8:5)은 비록 자기가 의롭긴 하지만, 이 방법만이 그가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는 길일 것이라는 점을 시인한다(욥 9:15).
다후드(Dahood)는 시 77:9[H10], "하나님이 은혜 베푸심을 잊으셨는가"(AV-Hath God forgotten to be gracious?)에 나오는 한노트를 부정사로 보지 않고 실명사로 간주하여 라하마이우(창자 bowels)와 비슷한 뜻을 지닌다고 시사한다. 그는 이 구절을 "하나님의 가장 깊은 부분들이 말라 버렸는가" Have the inmost parts of God bried up?라고 번역한다.
하난(@n"j; , 2603)이란 동사와 그 파생어들은 51명의 이름의 구성요소이다. 이 중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즉 바알하난(Baalhanan), 엘하난(Elhanan), 하나넬(Hananel), 하나니(Hanani), 하나니야(Hananiah), 한나(Hannah), 하눈(Hanun), 헤나닷(Henadad), 여호하난(Jehohanan), 요하난(Johanan), 드힌나(Tehinnah). 푼족의 이름 한노(Hanno)와 한니발(Hannibal)을 참조하라.
여자 이름 한나는 우리에게 안나(Anna), 앤(Ann), 낸(Nan), 낸시(Nancy), 아니타(Anita, 스페인식 이름) 그리고 안네트(Annette, 프랑스식 이름)라는 이름을 제공해 주었다. 요하난은 우리에게 존(John), 즉 쟝(Jean, 프랑스식 이름), 지오반니(Giovanni, 이태리식 이름), 유안(Juan, 스페인식 이름), 요한(Johann), 그리고 한스(Hans, 독일식 이름), 쟌(Jan, 네덜란드식 이름), 그리고 이반(Ivan, 러시아식 이름)이란 이름을 제공해주었다.
하난(@n"j; , 2603) 등의 동의어들에 대해서는 특히 헤셋(dseje , 2617)과 라훔(!Wjr" , 7349)을 참조하라. - E. Yamauchi.] (p.549*)
[동의어] (관련성구)
an:(4994, 나)
바라건대, 청컨대, 자
나(불변사)는 간청과 권고를 나타내는 불변사이며, '제발, 바라건대, 청(원)컨대' I(we) pray, '자,이제' now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05회 나오며, '청컨대'(창 12:13, 창 19:7, 창 24:45), '자, 이제'(창 18:21, 창 27:9, 창 33:11), '오 oh'(창 18:30)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불변사가 사용된 용법 중 흥미로운 실례는 시 118:25의 호쉬아 나 "오 주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O Lord save us"(NIV)이다. 이 외침은 예수님의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시에도 발해지는데, 그때 군중들은 또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시 118:26)라는 구절도 인용하였다("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호산나", 마 26:9).
헬라어 호산나는 히브리어 표현인 '호쉬아 나'의 음역이며, '우리가 비옵나니(혹은 '오') 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의미한다. 이 부르짖음은 도움을 요청하는 부르짖음이며(시 118:25), 할렐(Hallel) 시편(시 113편-시118편)과 더불어 예배의식에 사용되는 문구이다. 성막에서 요제의식이 거행될 때는 이 표현이 번제단 주위의 엄숙한 회중 행렬에서 기쁨의 탄성이 된다. 그리고 시 118편이 때때로 음악처럼 메시야적 연주를 하듯이 이 표현도 메시야적 소망을 반향할 때 사용되었다. 눅 19:39에서 어떤 바리새인들은 예수께 와서 예수의 제자들이 이렇게 부르짖는 것에 대해 비난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만일 제자들이 잠잠하면, 바로 저 돌들이 말할(소리지를) 것이라고 반박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비난하는 한 가지 이유는 의심할 여지없이, 구약성경에서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외침은 여호와를 향한 외침이기 때문이다. 신약성경에서 이 외침은 다윗의 자손 예수에게 돌려진다.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무리들의 무지의 탓으로 여기긴 하지만 예수에게 이러한 찬양을 돌리는 것을 극도의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는 이것을 영광스러운 진실로 받아들였다.
(참조: R. L. Harris; HELOT).
[동의어] (관련성구)
ll'P;(6419, 팔랄)
중재하다, 기도하다
팔랄(동사)은 기본어근이며, '중재하다, 개입하다, 기도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84회 나오며, 피엘형과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
팔랄은 대부분 히트파엘형으로 사용되었다(예외: 창 48:11, 삼상 2:25, 시 106:30, 겔 16:52). 이 어근 히트파엘형의 번역어는 '기도하다'가 된다. 그 배후에 있어 어의상의 발전은 뒤에 논의될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기도'를 의미하는 전문 술어가 풍부하다. 기도 또는 기도하다를 뜻하는 히브리 단어가 최소한 12개는 존재한다. 그러나 '기도'의 뜻으로 쉽게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상용어는 테필라 및 그와 관련된 동사 팔랄이다. 팔랄의 어원에 대해서는 수많은 학설이 제시되었다. 19세기에 벨하우젠(Wellhausen)은 이를 아랍어 팔라(falla: 검 끝을 뾰족하게 만들다)와 관련시켜 팔랄이 '자신을 베다 또는 자해하다'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예배 중에 광란 상태에서 자해 행위를 하는 이교도의 풍습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행위는 율법에서 금지되었다(신 14:1).
두번째 설도 역시 히브리어 팔랄과 아랍어 팔라(falla)를 관련시키지만 양자 간의 관련성을 일반적 의미 '깨뜨리다, 베다'에서 찾고 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의미가 연속적으로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베다-나누다-비교하다-구분하다-판단을 내리다(Ap. Thomas).
세번째로 히브리어 팔랄과 나팔이 '넘어지다' to fall를 의미하는 동일한 한 어간에서 발전된 것이라는 제언인데 이 경우에는 따라서 기도와 부복이 강조된다.
네번째 학설은 파생어들의 용법을 근거하여 '평가하다, 사정하다'라는 의미를 팔랄 속에서 찾은 것이다. 그렇다면 피엘형(본 항목 초두에서 언급된 4번의 용례)은 '간주하다, 생각하다, 판단하다'(창 48:11) 또는 '평가하게 하다'(겔 16:52, '네가 네 자매들을 위한 호의적 평가의 원인이 되었다', 즉 예루살렘이 심히 타락하여 소돔과 사마리아를 상대적으로 천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를 의미하게 된다(Speiser)(겔 16:52의 한글개역: "네가 네 형과 아우를 '논단하였은즉'").
그렇다면 이 어근의 피엘형과 히트파엘형의 관계는 무엇이며 이 동사의 84회 용례 중 '기도하다' to pray를 의미하는 히트파엘형으로 80회가 사용되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로 기도를 뜻하는 여러 히브리어 동사가 주로 힛트파엘형으로 발견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보자. 왕상 8:33, "그들이 주께 빌며 간구하거든", 스 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 사 44:17,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전통적인 설명에 따르면 히트파엘형은 펠릴림(재판관들)과 관계가 있으며 까닭에 히트팔렐은 '재판관인 하나님께 호소하다'를 의미한다고 한다. 두번째 해석은 팔랄을 '깨뜨리다'로 생각하여 재귀형인 히트파엘형이 '자신을 깨뜨리다' 즉 '통회하다, 기도하다'를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이다(Goldmann). 셋째 학설을 살펴보면 피엘형 필렐의 의미인 '결정하다, 문제를 해결하다'에서부터 히트팔렐의 의미 '중개자로 행동하다'를 찾는 것이다(Ap-Thomas). 네번째 견해는 피엘형 필렐('평가하다, 사정하다')에서 히트팔렐(평가, 헤아림을 구하다, 기도하다)의 의미를 찾는 것인데, 이는 히브리어 히트파엘형의 구문론적 기능 가운데 하나가 단순 어간이 뜻하는 바를 구하고 찾는 것이라는 사항에 근거를 두고 있다(Speiser). 흥미롭게도 삼상 2:25에서는 팔랄의 피엘형과 히트파엘형이 나란히 놓여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중재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중재하겠느냐'(한글개역, 각각 "판결하시려니와", "간구하겠느냐").
동사와 명사 양자가 다 가장 빈도높게 사용된 것은 중재 기도를 가리키는 경우이다. 이러한 사실은 성전 봉헌식에서 백성들을 위해 드린 솔로몬의 기도가 가장 잘 예시해 준다(왕상 8장 그 대등장인 대하 6). 이 두 장에서만이 어근이 30회나 등장한다. 그 첫번 용례가 왕상 8:28로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참조: V. P. H. Hamilton)
[동의어] (관련성구)
q['x;(6817, 차아크)
소리치다, 부르짖다, 부르다
차아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소리치다, 부르짖다, 부르다', 니팔형에서 '부름 받다, 소집되다', 피엘형에서 '큰 소리로 외치다', 히필형에서 '함께 모이게 하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회 나오며, 칼, 니팔, 피엘, 히필형이 사용되었다.
1. 칼형에서 '소리치다, 부르짖다, 호소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a) 차아크는 도움을 위한 외침이나 부르짖음에 대해 사용되었다.
① 백성들이 바로에게 양식을 위해 부르짖었다(창 41:55). 백성이 모세에게 여호와의 불로인해 부르짖었다. 이것은 여호와를 원망한 백성에 대한 진노불이었는데 모세가 기도함으로 진화되었다(민 11:2). 선지자의 생도들은 자기들이 만족스럽게 먹고 있던 국에 독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황급하게 괴로이 소리쳤다(왕하 4:40).
그리고 왕상 20:39, 왕하 6:26, 왕하 8:3, 출 5:15, 왕하 4:1, 출 5:8, 왕하 6:5에서 도움을 위한 부르짖음이나 호소를 묘사한다.
②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종종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간절히 탄원해야 했다. 지도자로서 모세는 수많은 곤란과 환경에 처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그는 여호와께 인도해 달라고 필사적으로 부르짖었다(출 17:4). 한번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부르짖기를 중단하고 행동에 착수하라는 응답을 내렸다(출 14:15).
의인들은 자신들의 국가가 입은 재해를 보며 크게 부르짖으며 슬퍼한다(애 2:18).
하나님은 특히 고통 받는 자, 이방인, 고아와 과부의 부르짖음을 듣겠다고 약속하신다(출 22:22 이하, 참조: 시 9:12).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통으로부터 구해 내신다는 사실을 통해 그는 살아계신 참 하나님으로서 타와 구별이 되는 것이다(시 107:6).
그리고 창 4:10, 출 14:10, 출 15:25, 민 12:13, 민 20:16,수 24:7, 삿 4:3, 삿 10:12, 신 26:7, 사 19:20, 느 9:27, 시 34:17, 대하 13:14, 시 88:2에서도 도움을 위한 부르짖음을 묘사한다.
③ 사 46:7에서 인간이 우상에게 도움을 위해 부르짖더라도 그것들은 응답하지 못한다.
(b) 차아크는 고통과 필요에서부르짖거나 울부짖음에 대해 사용되었다. 축복의 상실에 대한 에서의 울부짖음(창 27:34), 강간 당하는 여인의 소리지름(신 22:24, 신 22:27), 용사들의 부르짖음(사 33:7)을 묘사한다.
마지막 때에 고통스런 마음에서 나오는 울부짖음이 악인들에 대한 형벌의 한 몫을 차지할 것이다(사 65:14).
그리고 렘 22:20, 사 49:3, 욥 35:12, 욥 19:7에서도 고통에서 부르짖음을 묘사한다.
(c) 사 42:2에서 하나님의 고난 당하는 종은 지상의 통치자들이 개혁과 직무를 추구하는 방식과는 다른방법으로 그의 임무를 성취하신다. 그는 길거리에서 외치지 않을 것이다. 즉 그는 군중들이 현 통치자들에게 반기를 들도록 그들을 선동하고자 하지 않을것이다.
2. 니팔형에서 모임에 '부름을 받다, 소집되다(삿 7:23, 삿 7:24), 히필형에서 '소집하다'(삼상 10:17)를 의미한다.
지도자는 적들을 추격하기 위해 백성들을 소집할 수 있다. 가나안 정복 이후의 첫 지도자였던 사울은 적과 싸우러 나가기 위해 전 국가를 소집할 수 있었다(삼상 13:4).
지도자들은 또한 중차대한 일을 계시하기 위해 백성을 집회에 불러 모으기도 하였다.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취임 시키기 위해 미스바에서 그러한 집회를 소집하였다(삼상 10:17).
3. 피엘형에서'큰 소리로 외치다'를 의미한다.
왕하 2:12, "엘리사가 보고 소리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에 찢고".
(참조: BDB; TWOT; HELOT).
[동의어] (관련성구)
hN:jiT](8467, 테힌나)
은혜, 은혜를 위한 기도
테힌나(명남)는 '호의, 은혜 favour, 은혜를 위한 탄원이나 기도 supplication'를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테힌나는 '은혜'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로 저주를 받은 자 되게 하여 은혜를 입지 못하게 하셨다(수 11:20). 스 9:8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잠깐 (아브라함으로부터 시드기야에 이르는 기간과 비교할 때 상대적인 것으로, 그 기간은 약 80년)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둔 것이다. 이 남은 자는 멸망과 흡수의 두 가지 위험으로부터 피하여 바벨론에서 팔레스틴으로 돌아온 자들이다(G. Rawlinson). 이 두 경우에 70인 역본은 엘레오스(자비)로 번역한다.
(b) 테힌나는 '은혜를 위한 탄원이나 기도'를 의미한다. 이 의미의 용례들 중 반수가 성전봉헌 때 드린 기도에 나온다(왕상 8:28 이하, 왕상 8:30-52, 왕상 9:3, 대상 6:19).
렘 36:7에서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린다: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날듯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와 분이 크니라"(렘 42:9, 단 9:20).
렘 37:20에서 왕에게 탄원한다: "내 주 왕이여 이제 청컨대 나를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렘 42:2에서 예레미야에게 간구한다: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소서 당신이 목도하시거니와 우리는 많은 중에서 조금만 남았사오니".
렘 38:26에서 왕 앞에 간구한다: "그들에게 대답하되 내가 왕의앞에 간구하기를 나를 요나단의 집으로 도로 보내지 말아서 거기서 죽지 않게 하옵소서 하였다 하라 하니라".
(참조: B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