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악
@w<a:(205, 아웬)
헛됨, 거짓, 사악, 불행, 고통
아웬(명남)은 '공허, 헛됨, 우상, 거짓말, 속임, 사악, 부정, 고통, 불행, 역행' 등을 의미한다.
아벤(명남)은 본래 두 국면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사악한데로 나아가는 고생을 강조하는 것, 다른 하나는 우상 숭배로 나아가는 헛됨을 강조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85회 나오며 다음을 의미한다.
(a) 아웬은 '공허 emptiness, 헛됨 vanity, 우상'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웬은 '텅빈, 헛된 것', 특히 '우상의 헛됨'에 대해 사용되었다. 슥 10:2에서 "대저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을 말하며...", 또한 사 41:29에서는 우상들이 그들의 예배자들을 속인다고 한다: "과연 그들은 다 헛되며 그들의 행사는 공허하며 그들의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 뿐이니라".
그리고 삼상 15:23에서는 우상숭배와 연관된 모든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심지어 사 66:3에서는 우상 자체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그러므로 호세아서에서 우상을 섬기는 도성인 베트엘("하나님의 집")은 경멸적으로베드아웬("우상의 집")으로 불리운다. 벧엘을 나타내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인 "벧아웬"(호 5:8, 호 10:5, 호 10:8, 암 1:5, 겔 30:17)이란 어구에서 우상숭배를 나타내는명칭이 되었다(호 5:8, 호 10:5, 호 10:8, 암 1:5, 겔 30:17). 암 5:5에서는 벧엘은 "허무하게 될 것", 즉 '아무것도 아닌 것, 헛된 것'이 될 것이라고 한다.
(b) 아웬은 말의 헛됨, '거짓, 사기, 속임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시36:4, 잠 17:4).
이 단어는 잠 6:12, 잠 6:18, 잠 19:28, 잠 22:8, 사 29:20, 슥 10:2에서 '속임수, 사기, 거짓'을 뜻하는 표준적인 히브리어 단어들의 의미와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c) 아웬은 '사악' wickedness, '부정, 죄악' iniquity(민 23:21, 욥 36:21, 사 1:13), '악인'(욥 22:15, 욥 34:36), '행악자'(욥 31:3, 욥 34:8, 욥 34:22, 잠 11:7)에 대해 사용되었다.
(d) 아웬은 '불행, 고통, 역경, 재난(앙)'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죄는 범죄자가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야기시키는 '고통과 슬픔'의 고되고도 지치게 하는 짐이다. 이런 의미는 시 90:10에 나온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RSV는 고생) 뿐이요". 또한 이와 유사한 의미가 잠 22:8에 나온다: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시 55:4에서는 "저들이 나에게 재앙을 던졌다"고 한다.
나의 슬픔의 아들(베노니) (창 35:18), "슬픔의 떡"(호 9:4), 그리고 시 90:10, 욥 15:35, 합 3:7 등에서 불행과 고통을 나타낸다.
(참조: Gesenius; TWOT).
[참고 - 명사 아웬(@w<a: , 205)은 (1) '부정, 불법', iniquity, '공허, 무익한 일' vanity, '슬픔' sorrow을 의미한다. 몇몇 학자들은 이 용어가 아랍어 아나('ana, 피곤하다, 지치다)와 아이눈('aynun, 약함, 슬픔, 고통), 히브리어 아인(@yIa' , 369, 무 nothingess)의 동족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관계는, 아웬(@w<a: , 205)이 참된 가치를 지닌 모든 것의 부재를 의미한다는 것을 암시해준다. 따라서 아웬은 악행, 간계, 거짓된 진술과 같은 '도덕적으로 무가치한 것'을 나타낸다.
다른 학자들은 이 단어가 '고통스러운 짐' 혹은 '곤경'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즉, 죄는 범죄자가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게 야기시키는 '고통의 슬픔'의 고되고도 지치게 하는 짐이다. 이런 의미는 시 90:10에 나온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RSV는 고생 trouble) 뿐이요". 또한 이와 유사한 의미가 잠 22:8에 나온다.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vanity, 아웬[(@w<a: , 205])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아웬((@w<a: , 205)은 미 2:1에서와 같이 범죄나 위법을 뜻하는 일반적인 용어로도 사용된다. "…악을 꾀하여…화 있을찐저"(미 2:1, 참조, 사 1:13). 몇몇 구절에서 이 단어는 거짓이나 기만을 의미한다. "그 입의 말은 죄악(iniquity)과 궤휼이라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시 36:3).
"대저 드라빔들은 허탄한 것(vanity, 시 ASV는 사악 iniquity)을 말하며…"(슥 10:2). 또한 사 41:29에서는 우상들이 그들의 예배자들을 속인다고 언급되어 있다. "과연 그들은 다 헛되며(vanity) 그들의 행사는 공허하며("과연 그들의 모든 행사는 공허하여 허무하며") 그들의 부어 만든 우상은 바람이요 허탄한 것 뿐이니라".
(2) 이 명사는 '죄악' iniquity, '불행' misfortune을 의미하며, 북서 셈족어에서만 발견되는 '강하다' be strong라는 의미를 지닌 한 어근에서 파생되었다. 이 단어는 성경에 약80회 나오는데, 거의 대부분이 시가서와 선지서에 사용되었으며, 특히 시편에 자주 나온다. 이 단어를 사용한 선지자들 중에서 이사야가 특히 두드러진다. 이 단어가 처음 나오는 곳은 민 23:21이다. "여호와는 야곱의 허물(iniquity)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불행', '배난' misfortune이라는 의미는 사악한 자들이 의로운 자들을 거스리는 책략에 대한 표현에서 나온다. 시편 기자는 악인들에게 불행이 닥치기를 기대했다. "나를 보러 와서는 거짓을 말하고 그 중심에 간악을 쌓았다가 나가서는 이를 광포하오며"(시 41:6). 이 의미에서의 아웬은 에드(dyae , 343, 재앙, 욥 18:12)와 동의어이다. 실제적인 의미에 있어서 아웬은 인간 존재의 일부분이며, 그런 의미에 있어서 이 단어는 시 90:10의 아말(lm;[; , 5999, 수고 toil)과 일치한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아웬은 보다 심층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이 없는 자들의 생활 방식을 특징짓는다.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리며 주린 자의 심령을 비게하며 목마른 자의 마시는 것을 없어지게 함이여"(사 32:6). 인간은 '죄악' iniquity으로 부패된다. 비록 모든 인류가 아웬(수고 toil)에 예속되어 있지만 음모와 거짓말과 기만하는 행위로 다른 사람들에 '곤경'과 '불행'을 야기시키며 즐거워하는 자들도 있다. 시편 기자는 본질적인 악을 다음과 같이 나타낸다. "악인이 죄악을 해산함이여 잔해를 잉태하여 궤휼을 낳았도다"(시 7:14, 참조, 욥 15:35). 흑암의 길에 속한 자들은 "행악자들" workers of iniquity, the doers of evil이며 불행과 재앙의 창조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웬의 동의어들은 '의'와 '공의'에 반대되는 라([r' , 7451, 악한)와 라샤(!yIr'h}n' !r'a} , 763, 사악한)이다. 그들은 의인의 멸망을 구한다(시 141:9). 시 5:5과 시 141:9 사이에는 행악자들에 대한 언급이 16회나 나온다(참조,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들을 미워하시며"[시 5:5]). 시편 5장은 악인을 거짓말하고 피흘리기를 즐기며 속이는 자로 언급하고 있다(시 5:6). 이 단어의 성질성의 측면은 아웬에 수반되는 동사에서 가장 잘 표현된다. 사악한 자들은 아웬을 행하고, 말하고, 낳고, 생각하고, 꾸미고, 모으고, 거두고, 경작한다. 또한 이것은 의인에게는 재난으로 나타난다.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배교적인 생활 태도로 인해 그들의 종교적 절기(사 1:13)와 율법(사 10:1)이 문란케 되었을 때, 그들은 이방인의 관습과 생활태도로 스스로를 타락시켰다. 선지자의 소망은 이스라엘의 정화가 있게 되고 난 후의 시대에 두었다. 즉 그 때는 메시야적인 왕이 공의와 의의 시대를 가져올 것이며(사 32장) 사악한 자들은 어리석음과 불신앙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70인역본에서는 아웬을 아노미아(anomia, 불법), 코포스(kopos, 일, 노동, 수고),마타이오스(mataios, 헛된, 무익한, 무용한, 무능한), 포네리아(poneria, 사악, 악의, 죄), 아디키아(adikia, 불의, 사악, 부정)로 번역하며 KJV는 '죄악' iniquity, '허무' vanity, '사악' wickedness으로 번역하였다. - 넬슨의 구약 해설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