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별 원어사전 구약 -"갈게 하다"

  

갈게 하다

db'[;(5647, 아바드)

일하다, 섬기다

 

아바드(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일하다 work, 봉사하다, 섬기다, 시중들다 serve'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390회 나온다.

 

아바드의 어원은 몇몇 셈어 어근의 개념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하다' to do'만들다' make를 의미하는 옛 아람어 어근과 (하나님을) '예배하다' to worship, (하나님께) '순종하다' obey를 뜻하는 아랍어 어근, 그리고 '노예로 삼다' to enslave, reduce to servitude를 의미하는 이 단어의 강조형 어근이 있다.

 

이러한 봉사는 사물, 사람, 혹은 하나님에게 향한 것일 수 있다.

이 단어가 사물에 관하여 사용될 때는 그 노동이 미치는 사물을가리키는 대격을 수반한다. : 밭을 '경작하다' to till(2:5과 그 밖의 곳에서 종종) 포도원을 '정돈하다' to dress, 세마포를 만드는 자(19:9) 혹은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48:18). 때때로 이 단어는 15:19(땅을) '갈다' to till (한글개역, "부리지")에서처럼 대격 없이 사용된다.

두번째로 이 단어는 예를 들어 야곱이 라반을 섬기는 경우와 같이(29:15, 30:26, 30:29) 사람 대격을 수반한다. 사람 대격을 수반하는 경우에 이 단어는 사람과 함께 전치사 ''를 수반한다. 즉 사람은 "타인에 의해 일한다" 혹은 타인을 노예로 사용한다(1:14, 22:13, 혹은 푸알 어간이 포로들이라는 말과 함께 사용됨, 14:3). 노예상태라는 것은 왕이나 통치자에게 '신하로서 섬기는' 것도 역시 포함한다(9:28, 삼상 11:1).

이 동사의 히필 어간은 '아무개를 (노예로 삼아) 강제로 일하게 하다'(1:13)를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길 때 그것은 속박이 아니라 오히려 즐겁고 자유케 하는 경험이다(3:12, 4:23, 7:16, 7:26, 10:26, 22:31, 21:15, 2:20, 3:14). 매우 자주 성경은 이러한 섬김이 전혀 신이 아닌 다른 신들에게 주어졌다고 기록한다(7:16, 왕하 10:18, 왕하 10:19, 왕하 10:21-23 ).

동일한 개념이 레위 자손이 여호와를 섬기는 것에 대해 사용된다(3:7-8, 4:23,4:30, 4:47, 8:11, 8:19 이하, ). 흥미롭게도 70인역본은 제사장들만의 공적인 직무를 가리키는데 헬라어 라트류오를 사용한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15:16을 제외하고는 신약의 사역(ministry)이나 그 기능들을 가리키는데 라트류오 어군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15:16에서 이 어군은 예수그리스도를 위한 바울의 수고를 언급한다. 그러나 다른 종교적인 문맥, 특히 구약의 의식(ritual)과 관련된 문맥에서는 라트류오 어군이 사용되었다(9:21, 10:11, 1:23).

(참조: W. L. KAISER; BDB).

 

 

[동의어] (관련성구)

vr'j;(2790, 하라쉬)

새기다, 갈다, 궁리(고안)하다, 침묵하다

 

1. 하라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파다, 새기다 engrave, 갈다, 경작하다 plow, 궁리하다, 고안하다 devise'를 의미한다. 기본적인 의미는, 금속을 새기는 것, 혹은 땅을 경작하는 것과 같이 어떤 재료 속으로 끼어 드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26회 나오며, , 니팔, 히필형으로 사용되었다.

 

(a) 칼형에서

이 단어는 '새기다'를 의미한다.

하라쉬는 몇 번 금속을 조각하는 것에 대하여 사용되었는데, 예를 들어 솔로몬 왕이 성전 일을 시키려고 부른 두로의 전문 기술공은 놋 일을 하는 '세공인' worker('조각사', 분사)으로 묘사되어 있다(왕상 7:14).

17:1에서 비유적으로, 마음 판에 새기는 것을 묘사한다: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단 뿔에 새겨졌거늘".

이 단어는 '갈다, 경작하다'를 의미한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부름을 받았을 때 열두겨리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고 있었다고 한다(왕상 19:19). 모세 율법에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라고 되어있다(22:10).

'갈다'라는 개념은 또한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이것은 악한 행동을 상징하며(10:13) 이스라엘은 악을 '밭 갈았다'고 비난 받는다.

129:3에서 이것은 '압제'를 상징하며, 여기서 시편 기자는 "밭 가는 자가 내 등에 '갈아' 그 고랑을 길게 지었도다"라고 울부짖는다.

이 단어는 대체로 악과 연결되어 '궁리하다, 고안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잠언서는 네 이웃에 대하여 "악을 고안하지 말며"(한글개역 - "모해하지 말며", 3:29)라고 말한다. 14:22에서 하라쉬는 악과 선 모두를 언급하는데, "악을 도모하는" 자는 그릇되고 "선을 도모하는" 자는 인자와 진리를 받는다고 한다.

6:14, 6:18, 12:20에서 악을 궁리하거나 고안하는 것을 묘사한다.

 

(b) 니팔형에서 '경작하다, 감을 당하다'를 의미한다.

미가는 예루살렘이 밭 같이 감(경작)을 당하리라고 예언한다(3:12). 26:18에서 미가의 예언을 인용한다.

 

(c) 히필형에서 이 단어는 삼상 23:9에서 다윗에 대하여(해하기 위해 '고안한', 분사) 계교를 묘사한다: "다윗이 사울의 자기를 해하려 하는 계교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2. 하라쉬(동사)는 기본어근이며, '침묵하다, 조용하다, 잠자코 있다, 말 못하다, 벙어리다'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약 50회 나오며, 칼형과 히필형으로만 사용되었다.

기본적인 개념은 말하지 않거나 듣지 않는 것으로 인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이다. 이 단어는 주체는 침묵하는 것을, 객체는 귀먹은 것을 뜻할 수 있다.

 

(a) 칼형으로 사용될 때는 대체로 '말하는데 있어서 침묵'과 관련된다. 이것은 언제나 하나님과 관련하여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다윗은 필요의 때에 그를 향하여 "잠잠하지" 말기를 여호와께 요청한다(35:22). 이 시편 기자는 83:1, H2에서, 하레쉬와 다맘을 병행적으로 사용하여, 이와 유사하게 기도 드린다. 칼형으로는 오직 1, 분명히 '귀먹다'를 의미하는데, 7:16에서 선지자는 열방이 장래의 이스라엘에 대하여 '귀먹을' 것이라고 말한다.

 

(b) 히필형으로 사용될 때도 대체로 '말하는 데 있어서의 침묵'과 관련되어 나오지만 칼형과 달리, 거의 항상 인간을 가리켜 사용된다.

그러나 그 의미는 칼형과 아주 똑같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의 종은 리브가를 보았을 때 그녀가 바로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내로 선택한 여인이 아닌가 하여 '침묵을 지켰다'('침묵했다')고 한다.

11:3에 나오는 히필형은 분명 사역적인 의미를 전달한다. 이 단어가 히필형으로 사용된 실례 중에서 단 한번 '귀먹다'를 의미한다. 즉 블레셋인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백성들은 사무엘에게 자기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멈추지 말라'(문자적으로, '귀 막히지 말라')고 촉구하였다.

 

(c) 이 단어는 히트파엘형으로 단 한번 나오는데, 재귀적인 의미를 지닌다: "혹이 가사 사람에게 고하여 가로되 삼손이 여기 왔다 하매 곧 그를 에워싸고 밤새도록 성문에 매복하고 밤새도록 종용히 하며 이르기를 새벽이 되거든 그를 죽이리라 하였더라"(16:2).

(참조: L. J. WOOD; B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