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 그리스도의 인성 CHRIST, HUMANITY OF

 그리스도의 인성 CHRIST, HUMANITY OF



정의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기독교 신앙과 삶의 중심이다.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죽음은 죄를 대속했으며, 그를 믿는 자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몸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를 아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과 같다.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인간이었다고 가르친다. 생물학적으로 예수는 마리아에게서, 겸손하게도 베들레헴에 있는 한 마구간에서 태어났다. 복음서는 예수께서 인간의 성장과 발달의 모든 과정을 경험했다고 기록한다. 예수는 피곤했으며, 배고팠고, 목말랐으며, 고통당했고, 죽으셨다(요 4:6, 19:28, 30절을 보라). 마태복음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왕들의 계통을 지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까지 이르는 예수의 족보를 더듬어 간다(1:1–17). 누가복음은 역으로 다윗과 아브라함을 지나 첫 사람 아담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예수의 족보를 밟아간다(눅 3:23–38). 의사였던 누가는 예수께서 완전히 평범한 육체적, 도덕적, 사회적 발전을 경험하셨다고 증언했다(눅 1:80).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눅 2:40)졌다.

● 지성적으로, 예수는 땅에 계시는 동안 지식과 지혜가 자라셨다(눅 2:40, 52). 하지만 그의 지식은 경우에 따라 제한되셨다(막 5:30–33, 9:21, 13:32). 이는 예수께서 인간이 되심에 있어서 그의 거룩한 속성의 독립적인 사용을 자발적으로 중지하신 결과다.

● 감정적으로, 예수는 모든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범위, 즉 연민, 슬픔, 동정, 기쁨, 염려, 불의에 대한 의로운 분노 등을 온전히 느꼈다. 예수는 사랑하는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셨다(요 11:35).

● 영적으로, 예수는 유대의 전통을 따라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았고(눅 2:21), 요한에게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았으며(눅 3:21–22), 일생 동안 기도 가운데 하늘의 아버지와 교감했고(막 1:35; 눅 6:12), 회당에서 예배를 드렸다(눅 4:16). 사회적으로, 예수는 가족과 친구들의 우의를 기뻐하셨다(눅 10:38–42). 그리스도는 갈릴리의 가나에서 다른 하객들과 함께 혼인을 축하했다(요 2:1–11).

● 직업상으로, 예수는 목수의 작업대에서 손으로 일하는, 목공 기술을 배우셨다(막 6:3).

예수의 생애의 마지막 무렵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셨다. 그의 옆구리의 창상에서 체액이 흘렀으며, 마지막 숨을 쉬셨다. 초기 기독교 사도들은 예수께서 다윗의 자손임(행 2:30)과, 나사렛에서의 어린 시절(2:22), 그리고 유대 지도자들이 잔인한 십자가형으로 살해한 한 사람으로서 그의 정체성을 인정했다(4:10, 5:30).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아브라함의 씨에서 났으며(갈 3:16), 다윗의 후손이며(딤후 2:8), 마리아에게서 율법 아래 태어났음을 증언했다(갈 4:4). 바울은 적어도 세 번(롬 5:15, 17, 19절) 예수께서 진실로 “한 사람”이었다고 언급했다.

종교 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하나님의 아들이 마리아의 젖을 먹었으며, 요람에서 잠이 들었고, 고통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죽으셨다고 기록했다. 신학자 장 칼뱅(John Calvin)은 주장하기를 형벌이 당연한 우리 죄인은 반드시 사람으로 태어나야 하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과 영혼을 지닌 완벽한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참된 아들은 우리의 몸으로 당신의 몸을, 우리의 살로 당신의 살을, 우리의 뼈로 당신의 뼈를 만드셨으며, 그리하여 그는 우리와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예수는 모든 면에서, 즉 심리적으로, 성적으로,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행실로 온전히 시험 당하셨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히 4:15)다.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후에 예수는 사탄에게 이끌리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마 4:1–11). 예수는 아버지의 뜻에 반하는 길로 그의 신성한 권세를 사용하도록 유혹하는 사탄의 강력한 힘을 경험하셨다. 또한 예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묵상할 때에 시험 당하셨는데(막 14:32–42), 깊은 비탄과 불안에 빠지셨다(33절). 예수는 세 애제자와 함께 영혼의 고뇌를 나누었다. 그는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34절)다고 했다. 누가는 예수의 시험의 고통이 그의 몸에서 땀방울이 마치 핏방울처럼 떨어질 정도로 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눅 22:44). 인간으로서,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의 육체적이고 감정적인 고통을 피할 수 있기를 염원했다(막 14:35–36). 하지만 최후에 예수는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대신 그를 향한 아버지의 자애로운 목적에 따르기로 했다(36절).

비록 시험 당하셨지만, 예수는 결코 죄에 굴복하지 않았다. 예수는 전 생애를 통하여 온전히 죄가 없는 자로 남으셨다. 즉 한 인간으로서 그의 성격에는 어떠한 결핍도, 이상한 점도, 사악한 결점도 없다. 예수는 제사장이나 하나님께 고백할 어떤 실수나 죄도 갖지 않았다. 성경은 예수께서 결코 죄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생각과 말, 행동에 있어서 완전히 거룩하게 살았다는 증언들로 가득 차 있다(요 8:46; 행 3:14; 고후 5:21; 히 4:15, 7:26; 벧전 2:22; 요일 3:5을 보라). 변함없이 완전하게 거룩한 채로, 예수는 우리의 죄를 위한 흠이 없는 희생을 드릴 수 있었다.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생애는 전적으로 죄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셨다(막 2:5).

많은 철학가와 사상가는 예수의 참된 인성을 거부해 왔다. 초기 기독교 이단 사상 중 하나[가현설, 헬라어 동사 도케오(dokeo, 나타나다)에서 유래했다]는 예수께서 인간이었음을 부인하고, 대신에 그리스도가 하늘의 영의 어떤 종류이며 단지 인간인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영지주의자들은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고통은 환영이었다고 단언했다. 그리스 사회에 널리 퍼진 이러한 이단 사상은 사도 요한에 의해 가차 없이 부정되었다(요일 1:1–4, 4:2–3; 요이 7절). 또한 영지주의는 2세기 변증가 이그나티우스와 순교자 저스틴,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을 견인한 니케아 공의회에 의해서 반박되었다.



적용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인성을 부인하거나, 평가절하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예수의 구원 사역의 가치는 그의 신성만큼이나 인성의 진정성에 달려 있다. 우리는 예수의 완전한 인성을 평가절하하는 것에 반대하는 신약 성경 저자들의 경고를 마음에 새겨야 한다. 사도 요한이 표현한 대로,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모든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일 4:2–3).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면에서 예수를 모델로 삼아야 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라고 가르쳤으며, “나를 따르라”(요 21:22)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일에 열정적이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라고 했다. 바울이 사용한 “본받는 자”는 문자적으로 “흉내 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베드로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예를 본받거나 “따르라”고 명했다(벧전 2:21).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우리는 어떤 면에서 예수의 삶의 모범을 따라야 하는가?

● 지성적으로,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친 모든 것을 따라 그를 본받는 우리의 삶으로 예수의 생각들을 숙고해야 한다.

● 의지적으로, 우리는 전심으로 예수의 뜻을 행하기로 약속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를 기쁘게 하는 목표 영역을 선택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런 목표에 이르기 위한 전략이나 수단도 선택해야 한다.

● 정서적으로, 우리는 정결하게 하는 성령을 허용함으로써 예수를 본받고, 공감, 동정, 기쁨을 포괄하여 우리의 감정을 그리스도 자신의 것과 같이 만들어야 한다.

● 도덕적으로, 우리의 성품은 정의, 거룩함, 진실함에 있어 더욱 예수와 같아져야 한다. 우리의 양심이나 도덕적 척도는 불의에 대하여 더욱 민감해져야 하고, 하나님의 도덕적 기대에 더욱 명민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늘의 입장에서 볼 때 결코 완성된 완전함에 이를 수 없음을 실감할 것이다.

● 관계적으로, 우리는 자신과 타인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에 대하여 보다 솔직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진실하게 대화하고, 관계함으로써 예수의 본보기를 따라야 한다. 즉 우리는 죄의 장벽을 해체함으로써 주님과 가까이 걸을 수 있을 것이며, 그와의 소중한 친교를 즐길 것이다.

● 행위적으로, 우리는 모든 면에서 올바르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구 자원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목적들을 섬겨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복음의 목적과 왕국 건설에 신실하게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재능과 열정 및 자원을 그의 영광을 위해 현명하게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이와 같은 모든 면에서 우리는 나사렛 예수의 모습에 더욱 완전하게 다가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