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 그리스도의 주권 CHRIST, LORDSHIP OF

 그리스도의 주권 CHRIST, LORDSHIP OF



정의

그리스도인 됨을 의미하는 그 중심에는 주(主)로 예수를 받아들임이 있다. 그러나 “예수가 주님이시다”라는 고백과 주님 되신 예수와 함께 우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신약 성경에서 “주”에 해당하는 단어는 헬라어 단어 “퀴리오스”(kyrios)가 사용되었다.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퀴리오스는 넓은 의미의 범주를 지닌다. 누군가를 지칭하는 용례로 단순히 ‘~님’을 의미했는데, 아마도 예수를 만났던 많은 사람도 이 용례를 따라 그를 퀴리오스라고 불렀을 것이다. 하지만 퀴리오스는 종종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했다. 퀴리오스는 집과 아내, 노예 위에 완전한 권위를 지닌 주인이었다. 퀴리오스는 구약 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인 70인역에서 사용되었는데, “주, 주인”(하나님이 창조물과 백성 위에 군림하는 주였음을 반영)을 의미하는 히브리 단어 “아도나이”(Adonai)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동의한 “여호와”(Yahweh, 야훼)를 번역한 것이다.

예수는 자신을 “주”로 말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한 번의 중요한 예외는 예수께서 시편 110편을 인용했을 때다(막 12:35–37; 마 22:41–46; 눅 20:41–44). 예수는 군중에게 “어떻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있음과 동시에, 그의 주가 될 수 있느냐?”라고 물으시면서 그리스도는 한 사람의 다윗의 자손, 그 이상이었음을 시사했다. 예수는 명백히 자신을 가리켜 다윗의 주였던 바로 그 “주”라고 하셨다. 예수는 주님으로서, 다윗 왕권의 후계자로서 인간 이상의 존재였음을 내포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 직후, 사도들은 예수를 “주님”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오순절 날,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군중에게 설교하면서, 예수의 부활과 높아지심은 그가 “주”와 “그리스도”였음에 대한 하나님의 공개적인 증언이자 선언이었다(행 2:36)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가장 이른 시기의 예수에 대한 신앙의 기독교 진술 중 하나인 “주님이 오신다” 혹은 “주님이 가까이에 계신다”는 의미를 가진 단어 “마라나타”(Maranatha)를 인용했다(고전 16:22). 이런 경우들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께서 심판자와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인식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주님”이라고 불렀다. 예수의 초대 제자들 대부분은 구약 성경의 가르침, 즉 주님(여호와)이 도래했던 심판자와 왕이었음과 이 주님이 도래하는 심판으로부터 그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자들을 구원하실 것을 알고 있었다(욜 2:28–32). 바울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이 도래하는 심판에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구원의 복을 받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완성된, 즉 예수 안에서 구원하시는 사역을 신뢰함으로써 그의 방식대로 그에게 구해달라고 하나님을 부르는 것임을 보여 주기 위해 요엘서에서 한 구절을 인용했다(롬 10:3). 바울이 예수를 “주님”으로 불렀을 때(롬 10:9, 13), 바울은 도래하는 심판자인 예수께서 또한 그 심판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임을 의미했다. 바울에 의하면 이런 의미에서 주님으로서 예수를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흔적을 명백히 하는 것이다.

오직 개인의 삶 속에서 성령의 사역을 통해 각 사람은 예수를 주님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전 12:3). 이교도인들은 많은 주와 선생을 가질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오직 한 분, 예수만이 유일하게 그들의 주가 되신다(고전 8:5–6). 실제로 창조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예수께서 거룩한 주님이신 것을 알게 될 것이다(빌 2:10–11). 하지만 오직 예수를, 도래하는 심판에서 구원하실 구세주로 믿는 자들만 구원받을 것이다(롬 10:9–10).



적용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자들이다. 이것은 예수께서 여호와(야훼), 즉 구약 성경의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으로 인정함 없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러나 “예수는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은 정신적으로 예수의 신성을 확증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만일 예수께서 하나님이라면, 우리는 적극적으로 우리의 삶에서 그를 하나님으로 높여드리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부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주권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우리의 순종해야 할 주인, 주(主)로 대우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예수께서 명령하는 것과 그를 순종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도록 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만일 예수가 만인의 주가 아니라면, 그는 전혀 주가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만일 한 사람이 고의로 그리스도의 명령에 불순종하거나, 그(그녀)의 삶을 예수께 나누어 주기를 거절했다면 이 사람은 진실한 신앙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또 다른 이들에게는 이것이 복음의 값없는 은혜라기보다는 순종과 선한 행실을 조건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주권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서 이런 극단 중 하나에 빠질 필요는 없다.

진실로 누군가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그 사람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우리에게 병들었다고 말하며 잘 회복되려면 특정한 종류의 약을 먹어야 한다고 할 때, 우리가 진실로 의사를 신뢰한다면 우리는 의사의 처방을 따라 약을 먹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구원자에 대한 필요를 인정하고, 예수를 하나님의 도래하는 심판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자임을 진실로 신뢰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삶을 예수께 복종시키고, 예수의 명령을 따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예수의 구원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죄악이 반복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의 주권을 부인하도록 유혹하며, 우리 자신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만들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롬 7:14–25). 믿는 자로서 우리는 거룩한 주인인 예수의 정당한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심지어 예수를 대우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알면서 실패할지라도 그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예수의 주권에 대한 복종은 성령이 우리를 지배하도록 허락하며(엡 5:18; 롬 8:9–14),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에게 순종함으로써 보다 예수를 닮아가려는 점진적인 과정이다(롬 6:12–23). 예수의 주권에 대한 복종은 우리의 결정과 감정들을 그의 지배 아래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우리의 모든 시간과 재산의 소유자임을 인정하는 것이고, 예수로 하여금 우리의 관계들을 인도하시도록 허용하는 것이며, 우리의 재능과 능력을 그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마 25:14–30; 롬 12:1–2; 엡 4:17–6:9). 주로서 예수를 경배할 때, 우리의 삶은 성령의 지배를 증거하는 성령의 열매들로 점점 장식될 것이며, 불신자들의 특성을 보여 주는 행동들을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갈 5:16–26). 예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은 우리가 예수를 점점 더 알아가고, 그를 점점 더 닮아가는 것처럼 끊임없는 순종으로 인도할 것이다(벧후 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