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 기적 MIRACLES

 기적 MIRACLES



정의

기적은 일반적인 과학적 관찰이나 사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조물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기적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나타난다. 기적은 자연, 질병, 죽음, 귀신을 능가하는 능력을 포함한다. 그러나 기적은 단지 예기치 않거나, 경외심을 품게 하고, 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아니다. 기적은 실재하는 것이다. 기적은 가끔 약간은 무서운 것일 수도 있지만, 기적의 도움을 입거나 치유를 받은 사람은 기적에 감사한다.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 가운데 일하시기는 해도, 기적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특별한 방식을 대표한다. 기적은 하나님이 창조물보다 높고 위에 계신 분이기 때문에 그분이 세우신 창조 질서 안에서 일하시는 데 아무런 제한이 없음을 보여 준다. 기적은 일상적인 삶의 배경에서 툭 튀어나오기 때문에, 기적은 또한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하나의 방법이다. 기적은 하나님의 인격, 사랑, 규정을 드러내는 사건들의 일반적인 과정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걷어 올리는 한 방법이다.

기적은 때때로 “표징”이나 “기이한 광경”으로 불린다. 그것은 정도가 지나친 어떤 것, 즉 하나님이 강력하고 틀림없는 방식으로 드러내기를 열망하는 어떤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표징이다(사 7:11; 요 2:11). 기적은 주님의 기쁨, 위엄, 경외감을 낳기 때문에 경이롭다(눅 1:11 이하; 욜 2:30).

때로 하나님은 사람들과 협력하여 기적을 일으키신다.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일하셨던 모세, 아론, 여호수아,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다니엘, 요나, 예수, 베드로, 바울, 스데반, 빌립 등을 보여 준다.

구약 성경에서 우리는 창조(창 1–2장), 홍수(창 7:17–24), 불타는 떨기나무(출 3:3), 출애굽(출 3–12장; 14:21–23), 만나의 공급(출 16:13–36), 아론의 지도자로서의 검증(민 17:8), 놋뱀을 바라봄으로 치유(민 21:9), 여리고의 함락(수 6:6–20), 삼손의 힘(삿 14–16장), 죽음에서 살아난 과부의 아들(왕상 17:17–24), 요단 강에 떠오른 쇠도끼(왕하 6:5–7), 풀무 불에서 건져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단 3:10–27), 사자 우리에서 구원받은 다니엘(단 6:16–23), 물고기 뱃속에 있던 요나(욘 2:1–10) 등과 같은 수많은 기적들을 본다.

신약 성경도 소경의 치유(마 9:27–31; 막 8:22–26; 요 9:1–7), 폭풍우가 잠잠하게 됨(마 8:23; 막 4:37; 눅 8:22), 물고기 입 속에 든 동전의 발견(마 17:24–27), 죽음에서 일어남(눅 7:11–18; 요 11:38–44; 마 9:23; 행 9:40),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됨(요 2:1–11), 경이적인 물고기의 수확(눅 5:4–11; 요 21:1–14), 수천 명을 먹이심(마 14:15, 15:32; 막 6:30, 8:1; 눅 9:10; 요 6:1–14), 무화과나무의 말라 죽음(마 21:18; 막 11:12), 예수의 물 위를 걸으심(마 14:25; 막 6:48; 요 6:15), 바울이 행한 많은 기적(행 19:11–16), 스데반이 행한 커다란 기적(행 6:8), 사도들의 감방 혹은 감옥에서 놓임 받음(행 5:19, 12:7–11, 16:25–26), 성령에 의한 예수의 수태(눅 1:35), 변모(마 17:1–8), 부활(요 21:1–14), 승천(눅 2:42–51) 등의 기적들을 열거한다.

심지어 성경 기적의 일부 목록—교회사에서 셀 수 없는 다른 일은 말할 것도 없고—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적을 일상사로 생각하게 할 정도였다. 창조물 속에서 행하시고, 자신의 창조물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일상적이지만, 기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작업을 보는 특별한 방식이다. 하지만 기적은 결코 단지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의 행위를 결코 자신이 하나님인 것을 입증하기 위해 예루살렘 거리를 걷다가 당나귀를 타고 날아오르는 것과 같은 임의적인 행동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기적은 선하고 자애로운 하나님의 의지를 공개하고, 불러일으킨다. 대체로 기적이 하나님의 특권과 권세를 드러내는 것이지만(요 9:2–3), 또한 기적은 곤핍한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유익하게 하는 것이다.



적용

만일 기적이 일어난다면, 그리고 기적이 대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우리가 기적을 구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가? 이는 까다로운 문제다. 한편의 대답은 “당연하지,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위에 언급한 것과 유사한 신성하고 경이로운 하나님의 개입을 구하지 않아야 하지?” 다른 한편 기적적인 표징이나 개입을 구함에 있어,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동기나 태도는 세상 속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수는 말하기를 사람들이 기적의 표징을 구하는 것이 악하다고 했다(마 16:4; 눅 11:29). 이런 자들은 구하는 것 자체가 사악하기 때문에 악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악한 이유는 그들의 냉소적이고 완고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들은 예수가 이미 그들에게 자신을 명백히 드러내신 후에도 표징을 구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 그들은 자신들이 요구했던 것을 예수가 할 수 없었다고 간주하여 그를 거절할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또 다른 시기에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혹은 정치적 의제를 만족시키는 “수행을 하게끔” 예수를 미혹하려 했다.

사람들은 실제적으로 영적 추구를 훼방하거나 더디게 하는 방식으로 기적과 교류할 수도 있다(요 6:25–30). 기적은 소비 중심의 문화 속에서 사용하는 또 다른 상품이 될 수도 있다. 가령 예수가 수천 명의 군중을 먹이셨을 때, 예수를 둘러싼 사람들은 그가 기적적으로 제공한 빵을 금전적으로는 정확하게 평가했을지 몰라도, 예수가 진정한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빵이라는 보다 큰 그림은 놓치고 말았다.

또한 신약 성경은 “거짓 기적”을 묘사한다(막 13:22, 또한 출 7:11–22, 8:18–19에서 이집트 마술사들의 행위를 보라). 이런 기적들은 “실제”가 아니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기적들의 실제성이 그들에게 속이는 능력을 가져다준다. 그러므로 기적들을 거짓이라고 하는 이유는 기적들이 하나님의 대적들로부터 유래하여, 혼란하게 하고, 속이며, 정직한 구도자들로 하여금 예수를 떠나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때때로 기적적인 방법을 통해 하나님과 적법하게 교류하는 우리에게는 언제나 분별이 필요하다. 다행히도 이 능력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져 있으며(왕상 3:9; 빌 1:10; 히 5:14; 요일 2:20–21), 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히 분별의 은사가 주어졌다(고전 12:10).

또한 신약 성경은 기적에 대한 또 다른 경고를 제공한다. 기적을 실행하는 능력이 반드시 하나님과 제휴하여 활동하는 징표라고는 할 수 없다(마 7:22–23). 거짓 종교 지도자들도 기만적인 표징과 경이로운 일들을 행할 것이다(마 24:24). 이런 현상들은 특히 적그리스도와 그밖의 다른 강력한 영적 존재들에게서 기인한다(살후 2:3, 9; 계 13:13, 19:20).

가능할 수 있는 기적과의 잘못된 교류에 대한 모든 경고와 더불어, 우리는 왜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이 기적적인 힘을 의심하라고 가르치는지, 또 어떤 지도자들은 기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은 교회 안의 여러 사람들이 성령의 힘을 통해 기적을 실행했음을 드러낸다. 교회의 역사는 이런 모습을 계속할 것이다. 나아가 예수는 그를 믿는 자들이 그가 했던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하리라고 선포하셨다(요 14:12).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큰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논쟁할 수는 있지만, 확실한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이 그의 제자들을 통해 기적적인 방법으로 사역을 계속하려 하셨음을 함축했다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자신의 인격과 사역 속에 “가까이” 있다고 말했다. 기적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 나라의 증거다. 도래할 세상 속에서 완성되기까지 우리는 현재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동반하는 기적을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