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 견인 PERSEVERANCE

 견인 PERSEVERANCE



정의


견인 교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신자들이 은혜에서 추락하지 않을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 안에서 끝까지 견뎌서 구원받을 것임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의 권능과 신자들의 영적 근면의 특수한 조합은 참된 신자들을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기까지 지켜 준다.


   하나님은 자신의 능력을 통해 신실하게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끝까지 보호하신다. 예수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라고 했다(요 6:39). 사도 바울은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것”(고전 1:8)이며,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라고 단언했다. 바울은 그의 확신을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8)이라고 표현했다. 사도 베드로에 따르면,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는다”(벧전 1:5). 유다 역시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는 자들”이라고 했다(유 1:1). 다른 성경들도 믿는 자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다음을 포함해서 기술한다.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마음속에 썩을 수 없는 거룩한 씨앗을 심으심(벧전 1:23), 하나님의 “영원의” 본성을 따라 믿는 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심(요 3:36, 6:47; 히 5:9, 9:12, 15), 그분의 백성을 위해 중재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요 17:9, 11, 15–19, 24; 롬 8:34; 히 7:24–25). 베드로는 이를 요약적으로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벧후 1:3)라고 기록했다.

  ●      참된 신자들은 영적 훈련의 성실한 연습을 통해 인내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라고 했다(히 10:36). 믿음을 지속하는 것(고후 1:24),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굳게 잡는 것(요 8:31), 기도에 성실한 것(살전 5:17), 계속해서 경계하는 것(벧후 3:17), 악에 저항하는 것(벧전 5:8–9), 그리고 죄와 싸우는 것(엡 6:11–15)이 믿는 자들을 견디게 한다. 비록 믿는 자들은 이런 행동을 취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믿는 자들의 영적 안위는……우선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붙잡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을 붙잡는 데 있다.”


견인 교리는 자연적으로 몇 가지 질문을 불러일으키는데, 특별히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안위에 대한 것이다. 이 질문은 다음을 포함한다.


  ●      성경 속에서 믿는 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심각한 죄를 짓고, 영적 열심을 잃어버렸던 것은 어찌된 일인가? 여기에는 솔로몬, 다윗, 베드로도 해당된다. 또 다른 자들, 가령 보다 안락한 길을 위해 제자의 길을 포기했던 바울의 동역자 데마는 어떠한가? 그 대답은 이런 하나님의 제자들의 순종과 헌신의 과오가 최종적이고, 수정불가하다기보다는 일시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박탈당한 것은 구원이 아니라, 그들의 타락 속에서 잠시 동안 상실 당한 구원의 기쁨이다.

  ●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마 12:31–32, 막 3:28–30)를 지은 것이므로 그들의 구원을 상실하는가? 그 대답은 ‘아니오’다. 이 문제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의 초점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의도적인 저항이 참된 회개와 믿음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에 있었다. 이런 저항은 한 개인을 용서와 구원의 성취의 경계 너머에 자리하게 한다. 이 구문은 구원의 상실이나, 믿는 자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배신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적용


하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보호하신다는 교리는 우리 지상에서의 여정에 있어 신뢰와 소망의 깊은 원천이 된다. 예수의 참된 제자인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안전하게 붙잡고 계시며, 그의 피 값으로 사신 백성을 자신의 손에서 낚아채 가도록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앎으로써 위로를 얻는다. 필요하다면 아버지는 잘못을 행하고 있는 믿는 자들을 자애롭게 혼내시고, 훈련시킬 것이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그들이 죄 속에 계속 있도록 허용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자신의 안식처로 데려 가신다(고전 11:30을 보라). 만일 우리가 쾌락적인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상실하지는 않겠지만, 도래할 삶 속에서 보상의 상실을 경험할 것이다(고전 3:14–15).

우리의 영원한 안위의 신-인적 성질을 감안하면, 우리로서는 도덕적 해이함에 떨어지거나 거짓된 안위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귀중한 견인 교리는 예수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우리가 좋을 대로 사는 것을 조금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신실하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수단을 사용하여 우리의 영적 삶에 대한 지속적인 경계를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실하게 그의 자녀들을 보호하지만, 우리는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며, 기도 가운데 오래 참고, 악한 것들에 저항하며, 선한 모임을 지킴으로써 인내해야 한다. 우리는 삶의 불가피한 시련과, 쉽게 걱정과 낙담을 가져오는 고난을 경험할 때, 특히 확고부동해야 한다.

믿음을 고백하는 신자들로서, 우리는 항상 우리 마음의 상태를 주의 깊게 시험해야 한다. 신앙을 버린 사람들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가족이 아니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라고 했다(요일 2:19). 이는 배교가 실제로 구원을 상실한 결과 때문에 믿음의 자세를 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는 믿음의 고백을 위선적으로 행한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이반(離叛/離反)하는 것을 말한다. 오직 불신자들만이 배교를 행할 뿐이지, 예수 안에 있는 참된 신자들은 그렇지 않다. 성경은 경건으로 겉치장만 하였지, 예수를 부인하고 복음을 반대하는 많은 거짓 선생과 선지자가 있다는 사실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다(벧후 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