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 거듭남 REGENERATION

 거듭남 REGENERATION


정의


거듭남이란 성령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죄 많은 인생이 새로운 영적 본성으로 즉각적으로 창조됨을 설명하는 신학적 용어다. 거듭난 존재는 다시 태어난 존재를 말한다. 이 표현은 니고데모라 이름하는 바리새인과 대화하는 예수의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인간은 태어나면 비오스(bios)의 생명, 즉 생물학적 생명을 소유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 성령으로 난 자들은 조에(zōē)의 생명, 즉 새로운 영적 생명을 소유한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그 이유가 설명되는데, 예수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라고 말씀하셨다.

변화와는 달리 인간은 거듭남에 관여할 수 없다. 거듭남은 오로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방식으로 거듭남에 대해 말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야고보는 새로 태어남을 이런 표현으로 설명한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약 1:18). 그리고 사도 베드로도 다음과 같은 관점을 더했다. “그(하나님)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벧전 1:3–4).

거듭남은 근본적으로 믿는 자들을 위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낸다. 새로 태어남은 전인적인 타락을 정결하게 하고(마 7:17–18), 영혼에 새로운 영적 본성을 부여하며(엡 4:24; 벧후 1:4),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시킨다(갈 2:20; 히 3:14). 새로운 본성을 부여함으로써, 성령의 거듭남은 갱신된 지적, 의지적, 도덕적, 정서적, 관계적 능력을 영혼에 불어넣어 기독교 안에서 일생 동안 성화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 형상(imago Dei, 하나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적용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자라면 누구나 기독교 가정 안에서의 양육이나 세례 의식, 그리고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 거듭남을 가져온다고 믿지는 않는다. 이 은혜의 수단들은 유익한 것이지만, 영혼에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생명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단지 교회와 협력하거나, 단순히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일이 자동적으로 뿌리 깊은 죄를 깨끗하게 하거나, 예수와 사도들이 선포한 새로운 영적 창조를 낳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 말씀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라고 가르쳐 준다. 우리는 오직 성령에 의한 내적 거듭남에 의지하여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할 수 있으며, 그 결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거듭남은 모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제도를 변화시키려 할 때 생기가 있다. 비록 선의를 가졌다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거듭남과 떨어져서 보다 온정이 많은 공동체나, 보다 정당한 사회를 세우려고 하는 것은 변하기 쉬운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같다(마 7:24–27을 보라). 종종 말하는 것처럼, “인간 문제의 중심은 인간 중심의 문제다.” 폭넓은 영적 변화와 거듭남이 없는 혼자만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의 강령은 실패하고 만다. 우리가 희망하는 모든 긍정적인 제도적 변화에는 물질적, 도덕적, 영적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역사 전반에 걸쳐, 주목할 만한 사회 진보의 실례들은 전형적으로 그에 앞서 18세기 웨슬리안 부흥 운동, 19세기 초반 웨일즈 부흥 운동과 같은 영적 부흥 운동의 시기가 있었다. 철학가이자 변증가인 프랜시스 쉐퍼(Francis Schaeffer)는 적어도 전 주민의 10퍼센트가 개인적으로 거듭남을 경험하지 않고서는 관대함, 정의, 긍휼의 상태에 도달하는 사회는 있을 수 없다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