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사전 - 구원의 확신 SALVATION, ASSURANCE OF

 구원의 확신 SALVATION, ASSURANCE OF



정의

성경에서 구원의 확신은 그리스도의 사역과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들이셨다는 우리의 신념을 의미한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을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full assurance)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히 10:22, 현대인의 성경)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확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플레로포리아(plerophoria)는 “어떤 것의 진리를 완전히 믿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이 확신을 하나님의 성령으로부터 생겨난(롬 8:16),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우리의 믿음으로 설명했다. 실제로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소유권의 도장과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을 끝내시겠다는 서약을 나타낸다(고전 1:22; 엡 1:13).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을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다는 확실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로 묘사한다(요일 5:11–13).

이런 구원의 확신은 적어도 성경과 교회사 전반에 걸쳐 형성된 영적 문학에서 발견되는 네 가지 구별된 차원을 갖는다.

첫 번째 차원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임재와 사역에서 오는 내적 확신이다. 바울은 이 내적 확신을 포착하여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롬 8:16)라고 기록했다. 이 증언[summartoreo(숨마르토레오)]은 “증언이라는 수단을 통해 증거를 확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내적 증언은 이성적인 사고나 감정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이 증거를 제공한다. 이 내적 확신은 단순한 합리적인 주장보다 더욱 깊은 것이다. 내적 확신은 깊이 있는 관계적 실재로, 자녀들이 부모에 의해 받아들여짐을 확신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두 번째 차원은 하나님 말씀의 약속에 근거한 확신이다. 성경 전반에 걸쳐, 하나님 말씀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전언(傳言)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전언의 쓰여진 기록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두 번째 차원의 확신의 한 예를 요한의 진술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요한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했다(요일 5:13). 쓰여진 기록에 근거한 확신은 이 쓰여진 기록이 신뢰할 만하고, 하나님 자신의 권위를 갖는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성경이 참으로 믿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하나님 자신의 권위를 갖는다고 고백한다. 그러므로 내적 확신과는 대조적으로, 이 차원의 확신은 보다 합리적인 실재다. 하나님의 신뢰성, 성경의 신뢰성을 인정으로써,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확신을 지속한다.

확신의 세 번째 차원은 우리의 믿음의 공동체적 성질과 관계된다. 성경에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전혀 없다. 믿음과 회개의 결심에서부터 믿는 자들은 성도의 공동체와 결합된다. 이 공동체는 믿는 자들이 신앙이 진정한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받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한다. 몇몇 전통 속에서 입례나 세례식의 수단을 통해 얻게 된다. 또 다른 전통에서는 믿음의 증언을 낭송함으로써 얻는다. 이런 행동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용서와 구원의 완성에 대한 희망적인 기대에 대한 각 개인들의 확신을 지속적으로 강화시킨다. 성경은 이 세 번째 차원을 사람들의 믿음을 “시인하는” 행위와 연결시킨다(롬 10:10–11).

구원의 확신의 네 번째 차원은 성례전적 차원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세례와 우리의 믿음을 장려하는 만찬의 성례를 베푸셨다. 믿는 자들은 성례에 규칙적으로 참여할 때, 자신들의 믿음의 확신을 강화하며, 자라가게 할 수 있다(요 6:51–58). 만일 믿는 자들이 성례에 지속인 참여를 포기한다면, 그들의 확신은 화석화되고 약화될 것이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과시할 만한 권리로서가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선물로서 구원의 확신을 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받아들임과 구원의 완성에 대한 우리의 확신은 우리가 다른 이들보다 더 의롭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확언을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 7:7–8).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심은 우리의 명성, 숫자, 지성, 도덕적 우월성 때문도 아니며, 우리 안의 그 무엇 때문도 아니다. 우리의 구원의 확신의 적용은 이 실제 안에서 자기 의나 자기만족이 아닌,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앞서 언급한 모든 네 가지 차원에서 자신을 깨닫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1. 우리가 지속적인 영적 훈련에 참여함으로써, 성령에 대한 민감성을 연마할 때, 우리는 내적 확신 속에서 성장한다. 이 훈련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신원에 대한 성령의 증언을 인지할 수 있도록 우리 내면의 청각을 정교하게 조정한다.

2. 우리는 마음을 성경 속에 흠뻑 담금으로, 성경의 이야기 세계가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세계가 되도록 허용하는 말씀의 차원에서 성장한다. 렉티오 디비나(lectio divina, 거룩한 독서)와 렉티오 콘티누아(lectio continua, 성경 연속 강해)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이런 과정뿐만 아니라, 규칙적인 성경 읽기와 설교 듣기에 도움이 된다.

3. 우리는 믿음의 결심을 강화시키고, 하나님의 약속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같은 마음을 가진 예수의 제자들에게 둘러싸임으로써 공동체적 차원에서 성장한다.

4. 우리는 예수의 다른 제자들과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성례전에 정기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성례적 차원에서 성장한다.